봉운 김태한 (鳳雲 金泰漢)

복음학원 설립 교장

언어과학회 초대회장ㆍ계명대학교 2대총장

현재) 재단법인 복음장학회 이사장 · 대구남산교회 원로장로

저서) 갚을 수 없는 恩惠ㆍ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ㆍ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 外 다수

 

부조리의 출구(出口)

     

우리의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종교, 민심은

         땅에 떨어지고 추악하다.

 

 

 오늘날 삶의 상황이 잔인하다.

거대한 부조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데 개인은 너무 무력하다, 참담하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자. 앞으로도 실수와 좌절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있을 것이다. 괜찮다. 한 번 더 하면 되지 않나. 조건이 하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인류의 구세주인 그분에게 접속되면 진행이 가능하고 실패는 사라진다.

 철학은 가진 사람에게는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아름답고 건강한 철학은 성공의 디딤돌이다. 삶의 존재의 이치를 풀어내고 그 존재를 밝힌다. 희망은 다시 시작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길이 된다.

 

     먼저 부조리의 수레바퀴의 출구를 찾기 위해

          우리는 다음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실을 심어야     안정이 있고

           의를 심어야       변영이 있고

           진리를 심어야     자유를 얻고

           사랑을 심어야     화평이 있다

           겸손을 심어야     존귀가 있고

           희생을 심어야     승리가 있다
            거짓을 심고       잘 되기를 바라고

           분쟁을 심고       번영을 바라고

           불성실과 요행을 심고   좋은 성과를

           바라는 것은 비과학성이다.

 “심은대로 거둔다” 참지 않고 화평을 바라는 것은 큰 잘못이다. 조용히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자.

          사랑과 인내는 같은 뿌리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을 실천하면

          사랑이 습관화 되고

          습관화 되면 앞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 수 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희망을 거둔다.

 

     잔인한 수레바퀴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한 개인의 속죄의 절규를 들어 본다      

 

      거울 속에 나타나는 너의 영상은

      풍상 겪다 살아남은 늙은 호랑이.

      험준한 산등성을 마구 누비고 다닌

      그 기백은 어디가고 외롭게 앉아

      지난날을 돌이키며 명상에 젖었구나.

 
       온 산이 좁을세라 골짝 마다 휘젓고

      산짐승 뒤쫓던 그 곳은 너의 어리이너.

      눈앞의 두려움 무서움은 안중에도 없이

      오기 패기 앞세워 철없이 덤빈

      그때 일을 생각하면 허황한 꿈.

 

      살기 위해 애꿎은 생명을 해꼬지하고

      너로 말미암아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

      저지른 죄과로 회한의 눈물 머금고

      맡은 천수 다해 몸져누울 그때는

      목청 높여 포효하며 속죄 해야지(박진석).

 

 

  순례자가 되여

 

 숙소에 돌아와서 이제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밤으로 생각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 곧 잠이 들었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다시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국제공항으로 가서 그 곳에서 로마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공항으로 가기 전 우리는 유대인 학살 기념관(야드반셈)으로 갔었다. 그 곳은 유대인 군인 묘지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이  곳 깊은 골짜기에는 아름다운 큰 나무들의 숲이 있어 평화의 동산과 같았다. 얼마 전의 이스라엘의 유명한 하벨 총독의 무덤도 있는 곳이다. 유대인 학살 기념관(야드반셈) 입구 양쪽 도로 가에는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특이한 나무와 그 나무 앞에 그 나라의 이름을 적은 돌 명패가 있다. 나는 우리나라 나무도 응당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눈여겨보았으나 달리는 버스 창가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잔혹한 나치 독일인 손에서 무참히 죄 없이 학살된 600만 유대인들의 혼을 달래는 이 기념관의 이름을 야드반셈(이사야 56:5)이라 한다. 그 뜻은 기념물과 이름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어둠의 역사를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세워진 기념관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될 것이다.

기념관 전시실 전체는 검정 색으로 어둡게 덮여서 과거 암흑의 현장을 상징하고 있다. 이곳에는 지난 날 핍박 시절의 사진, 찢어진 신문, 잡지, 서적, 각종 문서가 전시되어 있고, 나치의 멸망시까지의 수난의 역사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여러 전시실로 깊이 들어갈수록 유대인들의 비참하고 억울한 장면을 화면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많은 시체가 언덕 밑에 쌓여 있는 곳에서 한 사람이 바로 사살되는 화보에 누구나 큰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전시실에는 살인 가스실로 끌려가는 남녀노소들의 긴 행렬이 화면에 있다. 그 가스실 굴뚝에는 검은 연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기념관 전시실에서 나오면 당시 학살된 사람들의 이름이 보존된 곳이 있다. 폴란드에서 약 300만, 소련에서 125만, 헝가리에서 45만, 루마니아에서 30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21만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자신이 돌보는 고아원에 느닷없이 나치 독일군이 들이닥쳤다. 그 방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집단 학살이라는 끔찍한 운명이 아이들 앞에 있었던 것이다. 야누쉬 코르착 폴란드 사람은 군인들에게 항의했다. 항의가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애걸을 했다. “제발 이 아이들을 데려가지 마세요. 아이들을 살려주세요.” 소용없었다. 결국 수많은 아이들이 군용트럭에 실려 가게 되었다. 보다 못한 코르착은 아이들과 함께 군용트럭에 올라탔다. 당신은 유대인이 아니니 내리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애들아, 무서워하지 마! 우리는 지금 소풍 가는 거야.” 예쁜 옷과 가방을 들게 한 후에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지막 생사의 기로에서 그는 놀라운 선택을 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처형됐다.  이 선생은 물론 자기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이 선생의 이름을 따서 아르스 코루자크 정원(광장)으로 명명하여 보존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 코루자크 선생님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 기념관의 텅 빈 방에는 22개의 유대인 포로수용소의 이름이 땅바닥에 적혀 있다. 잘 알려진 아우스비치 등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중앙에는 작은 횃불이 24시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여기 유대인 학살 기념관은 참으로 인류가 잊어서는 안 될 장소이다. 따라서 세계 각지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는 원한과 결심, 새 소망, 용기를 북돋우는 장소로 남을 것이다(김태한, 갚을 수 없는 恩惠).

 

   내가 약해 질 때

 

 잔잔한 바다 속에서 두 마리의 조개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 조개가 다른 조개에게 자기의 아픔을 하소연하고 있는 중이었다.

 “난 이상하게 몸속이 굉장히 아파. 아마도 내 몸속에 무엇인

가가 들어 있는 모양이야. 그것 때문에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야!”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조개가 득의만만해서 대꾸했다.
  “하늘과 바다에 찬미 있으라. 나는 아무데도 아픈 곳이 없어. 나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아주 건강해?” 바로 그때 게 한 마리가 옆을 지나가면서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게는 아픔 때문에 낙심에 빠져 있는 조개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네가 아픈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진주를 네 몸속에 품고 있기 때문 이란다!”

 진주가 어떻게 해서 생겨날까? 조개의 몸속에 깔깔한 모래알이 들어가게 된다. 연한 살 속에 모래알이 들어갔기 때문에 조개는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조개는 바로 그 고통 속에서 생명의 즙으로 모래알을 싸고 또 싼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해를 하다보면 마지막에는 아름다운 진주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어떤 종류의 가시나 고통이 있다면 “내가 약할 그 때가 곧 강함 이니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그 가시를 은혜로 알고 기쁨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해 보면 진주와 같이 보배로운 믿음, 진주와 같이 귀한 은혜, 진주와 같이 아름다운 인격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특별히 약해질 때가 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나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그 가시가 오히려 더 큰 축복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는 것을 알기에, 바울처럼 약한 것을 오히려 기뻐하며 자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우리 주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인내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2012.  8.  8

선교관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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