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운 김태한 (鳳雲 金泰漢)

복음학원 설립 교장

언어과학회 초대회장ㆍ계명대학교 2대총장

현재) 재단법인 복음장학회 이사장 · 대구남산교회 원로장로

저서) 갚을 수 없는 恩惠ㆍ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ㆍ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 外 다수

 

겉과 속이 다른 ‘나’

 

 

 인간은 마음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야 윤리도덕의 신사로 인정받고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같이 마음속과 겉이 일치하기에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열 길의 물 깊이는 알아도 한 길의 속마음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속사람(엡 3:6)뿐 아니라 겉사람(고후 4:16)의 행동도 ‘다 알고’ 계신다.

 

 스티븐슨(Stevens, 1886)이 쓴 글 중 지킬과 하이드(Dr. Jekell and Mr. Hyde)라는 소설이 있다. 이는 인간 심리를 다룬 명저이다.

 지킬 박사는 이웃을 돕고 자선사업을 하는 점잖은 신사다.  그러나 박사의 속마음에는 다른 사람이 있다. ‘하이드’라 한다. 하이드(Hyde: Hide)라는 말은 ‘숨는다’는 뜻이다. 하이드라는 사람이 지킬 박사 마음가운데 숨어 있다. 그래서 낮에는 지킬 박사로 나타나지만 밤이 되면 숨은 하이드가 나온다. 어두운 골목을 다니면서 음란, 방탕한 일만 한다.

 

 사람은 하나인데 겉은 신사요, 유명 인사인데 그 마음속에 숨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이 바로 죄에 물든 ‘나’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이기지 못하고 빠져든다.
  다윗은 목동으로 순진한 소년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 유대 민족의 제2대 왕으로 군림했었다. 하루는 그의 충복 우리아의 아내를 야비하게 간통을 하고 충복인 우리아 장군을 최전선에 보내 전사케 했다. 이는 다윗의 마음에는 숨은 사람이 있었다. 하나님 말씀은 “좌우로 날쌘 금보다 날카로워 혼과 골수를 쪼갠다”(히 4:12). 우리는 항상 기도에 힘쓰고 표리부동(表裏不同)한 태도를 물리치고 올 바른길을 걷도록 노력해야 한다.

 

 필자가 어떤 하루 지하철을 탔다. 좌석에 앉자 눈에 뜨이는 젊은 사람이 있었다. 저 청년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간이 안 되어 괜히 신경이 쓰였다. 눈 딱 감고 가면 그만인데. 요즘시대는 자기 개성과 욕구가 매우 강한 시대이다. 남녀 할 것 없이 외모를 가꾸는데 신경을 쏟고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드린다. 남성은 옷차림에나 머리 모양에 신경을 쓴다. 여성은 남성이 하는 것 포함하고 액세서리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어떻게 해야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외모 관리는 타인에게 호감을 주며 존중함을 받는데 도움이 된다. 잘 가꿔진 세련된 외모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21세기는 외모 관리에만 너무 치우치는 것 같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외모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실제로 외모에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은 내면세계를 잘 돌보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외모에만 투자하는 사람에게 존경심이 나지 않음은 당연하다.
 

  나이 90세가 넘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버스에 힘들어 올라 교통카드를 찍으니 많은 승객들이 자리를 양보한다. 때로는 끝내 양보하지 않고 눈을 딱 감고 앉아 있는 여대생을 만난다. 화려하게 옷치장도 안했으니 속마음도 검소하였으면 하는 생각이다. 아마 공부에 극히 피곤해서 그러니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자리를 양보하고 웃어른을 존경하는 태도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이다. ‘이점은 여대생에도 곧 같은 처지에 놓일 때가 오는데’.

 

 일반시민은 누구나 공공질서를 지키고 이웃 어른을 공경하는 미풍양속의 사회를 기뻐한다. 누구나 외모를 가꿔도 좋다. 그만큼 내면도 가꿔야 이 세상이 아름답고, 질서 있고,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특히 그리스도인은 내면생활에 더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터넷 검색어로 밝혀진 단어가 바로 ‘섹스’이다. 그 가운데서 포르노, 누드, 에로틱, 동성애 등이었다고 한다.

 

 사무엘상 6장에 나타난 두 마리의 암소는 여호와의 존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수레에 싣고 앞만 보고 가는 순결하고 깨끗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암소의 송아지는 우리에 가두었다. 이 암소들은 큰 소리로 울면서 베세메스 쪽으로 향하여 갔다. 베세메스에 도착했을 때 베세메스 사람들은 그 수레를 쪼개어 장작으로 삼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바쳤다.

 

 아! 참으로 귀하고 놀라운 눈물겨운 사건이다. 이 암소는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생명을 다해서 주님께 드린 희생양이 되었다. 겉과 속이 다름없는 이 놀라운 암소의 충성심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따라 가야 할 길이 아닌가. 깊이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문제로 생각이 된다.

 

 

2012. 10. 2 새벽

희망로 우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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