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논리와 사랑 (눅 15:25-32)

서론: 2주 전에는 눅 15:11-24을 본문으로해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둘째 아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상속을 미리 받고 아버지를 떠난 것은 마치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떠난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면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참 행복을 찾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형편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고통의 삶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아들이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겸손하게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사랑으로 그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받아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겸손히 돌아올 때 사랑으로 받아주십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15:25-32입니다. 맏아들이 등장합니다. 이 맏아들은 그동안 아버지를 잘 섬겨 왔는데, 동생의 결정이나 행동에 대해 불만이 많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동생을 위해 큰 잔치를 베푼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또 화를 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세워 아버지의 처사를 비방했습니다. 그 맏아들에 대한 대답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제목을 ‘논리와 사랑’이라고 정했습니다.

1) 맏 아들의 논리 (25-30): 25. 맏아들은 자기 동생이 돌아올 때도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을 다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는데 잔치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26. 그래서 그 한 종에게 무슨일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27. 그랬더니, 그가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집을 나갔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는데 건강하게 돌아왔기 때문에 주인이 그를 위해 소도 잡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28. 그 말을 들은 맏아들이 함께 기뻐하기보다는 화를 내었습니다. 잔치자리에 들어갈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나와서 맏아들을 권했습니다. 29-30. 이때에 맏아들이 자신의 논리를 폅니다. “나는 여러해 동안 아버지를 섬기고 아버지 말씀을 잘 들었는데, 여태껏 저를 위해서는 염소 한마리라도 잡아 제 친구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다 탕진한 둘째 아들이 돌아왔는데 소까지 잡아 잔치를 벌렸습니까?” 이런 말입니다. 이 맏아들의 말은 논리적으로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처사가 너무 불공평하게 보입니다. 아버지의 말을 잘 들은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아버지를 거역한 아들에게는 벌을 주어야 하는데, 거역한 아들에게 상을 베푸는 것은 인간의 논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하나님을 섬기려 했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버리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세리나 창녀들이나 혹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들이 돌아 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과 비슷합니다. 논리대로 하면 그런 죄인들과 이방인들에게는 그 책임을 묻고 충분히 벌을 준 다음에 그들을 구원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맏아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 모두에 대해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돌아 오는 아들은 다 받아주신다는 그 사랑을 맏아들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논리만 사용하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인간은 논리 위에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말하는 논리는 내 중심의 논리입니다. 인간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한 사람도 자기 나름대로는 논리적으로 할 말이 다 있습니다. 잘 들어 보면 나름대로는 다 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맞고 다 잘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옳고 옳지 못한 것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의 한계는 사랑에 대한 이해부족입니다.

2) 아버지의 사랑 (31-32): 31.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꾸중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설득을 시킵니다. “얘야, 너는 나와 항상 함께 있으니 내것이 다 네 것이다.” 사랑의 말입니다. 맏아들을 인정해 주고, 그에게 모든 재산을 다 줄 것이라고 확인시켜 줍니다. 32. 그리고는 자신의 처사를 이해시키려 합니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고 잃었다가 얻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누구나 하나님께 돌아 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가 죄인이든 이방인이든, 세리든 창녀든 하나님께 돌아 오기만 하면 구원해 주십니다. 단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만 하면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논리로 그의 공의만 주장하신다면 인간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또 다른 특성, 즉 사랑의 특성 때문에 우리 인간을 값없이 무료로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도 공의를 무시하지 않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인간의 죄값을 치루신 것입니다. 인간의 잘못을 예수님이 책임지도록 한 것입니다 (사 53:6). 인간의 구원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논리와 사랑을 함께 적용하면 좋습니다. 논리가 전혀 없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면 진리와 비진리의 분별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리에만 머물면 제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대인간에, 특히 성도간에 문제가 있으면, 이 두 가지를 다 생각해야 합니다. 우선 논리로 잘잘못을 가리십시요. 그 다음에 내가 이 형제를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로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십시요. 그러면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잠 10:12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런 사랑이 없다는 것을 주님께 고백하고 이러한 사랑을 주시기를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 사랑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16).

 

 

List of Articles
NO Subject Date Readsort
266 감사의 생활 (살전 5:16-18) 2013.02.21 4844
265 부자와 나사로 (눅 16:19-31) 2013.02.21 4875
264 산 자의 하나님 (눅 20:27-40) 2013.02.22 4913
263 과부의 두 렙돈 (눅 21:1-4) 2013.02.22 4915
262 율법과 복음 (눅 16:16-18) 2013.02.21 4958
261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 (벧전 2: 4-10) 2013.02.21 4962
260 경건한 계산 (눅 14:25-35) 2013.02.21 4966
» 논리와 사랑 (눅 15:25-32) 2013.02.21 4966
258 섬기는 자 (눅 22:24-34) 2013.02.22 4971
257 두 종류의 소경 (눅 18:31-43) 2013.02.21 4973
256 하나님의 사랑 (눅 15:11-24) 2013.02.21 4975
255 모퉁이의 머릿돌 (눅 20:9-19) 2013.02.22 4983
254 예수님의 권세 (눅 20:1-8) 2013.02.22 4985
253 예수님의 재림 (눅 21:20-28) 2013.02.22 5011
252 먼저 할 일 (마 6:25-34) 2013.02.22 5011
251 예루살렘과 그 성전 (눅 19:41-48) 2013.02.22 5013
250 경계와 용서 (눅 17:1-4) 2013.02.21 5030
249 첫 성찬식 (눅 22:14-23) 2013.02.22 5040
248 믿을 때에 받는 성령 (행 19:1-7) 2013.02.25 5053
247 한 죄인의 가치 (눅 15:1-10) 2013.02.21 5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