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예수님의 권세 (눅 20:1-8)


서론: 지난 주일에는 눅 19:41-48을 본문으로해서 ‘예루살렘과 성전’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멸망을 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외적으로 화려한 성전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멸망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의 원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인 예수님을 거부하고 성전을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날이 이르면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예루살렘을 사면으로 두를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너와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멸망시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돈, 건물, 이 세상의 명예나 권력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와 하나님의 의인 복음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에 저희들이 배운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20:1-8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세로 말씀을 가르치는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질문을 회피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우주의 진정한 권세를 가지신 분이 누구신가를 인지할 수 있기 바랍니다.
또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을 보고 교훈을 얻을 수 있기 원합니다.


1) 두 질문 (1-4): 1.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성전에서는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전하고, 기도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도 말씀에 근거한 복음과 기도로 정결케 하는 것이 좋습니다.
돈이나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일 때문에 성전이 우리 몸을 더럽히거나 너무 피곤하게 하는 것은 별로입니다.
타락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정상적인 예수님의 행동이 비정상적으로 보여 질문합니다.
타락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에서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말씀 공부하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생각합니다.
저도 목회하기 전에 교회에서 성경공부하고 복음에 대해 말하면 목사님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디다.
그래서 저는 복음전하고 성경공부하는 것 눈치 안보려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에 대해 듣기 원하고 말씀을 배우기 원하는데 목회자들은 그것을 싫어합니다.
목회자가 복음을 깨닫지 못했고 교회가 타락했다는 증거입니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와서 첫 질문을 합니다.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성전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대개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대개 사두개인들이었고 서기관들은 대개 바리새인들이 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정식 교육을 받지 않으셨으면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교육받은 자기들처럼 어떤 교육을 받으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모든 말씀을 모세에게 직접 주신 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무료로 주신 분입니다.
믿기만 하면,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제사장 무리들은 어리석고 교만한 질문을 했습니다.


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의 질문에 바른 대답을 주시지 않은 기록들이 가끔 나옵니다.
동문서답을 하지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하거나 교만한 마음으로 질문할 때는 대개 바른 대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는 한 율법사에게도 그렇게 하셨고 (눅 10:25-37), 한 부자 관원에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눅 18:18-30).
오늘의 이 제사장 무리에게도 질문에 답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질문하셨습니다.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나 사람에게로서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에 제사장 무리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에 자신들이 세례 요한을 믿지 않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했으면 참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기보다는 서로 의논했습니다.


2) 제사장 무리들의 의논 (5-7): 5. 그들은 고민에 빠져 의논했습니다.
그들은 정답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인데 그들이 교만하여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른 대답을 하면 왜 세례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고 책망을 들을 것입니다.
6. 그런데 세례 요한의 세례가 사람에게서 났다고 대답하면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다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웠습니다.
7. 그래서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세례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자신의 교만과 불신을 인정하기보다는 모른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자신들의 교만도 숨길 수 있고 백성에게 돌을 맞을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교활함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13년 전에 어떤 한인 교회에서 목사님께 제가 평신도로서 목회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은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고 목사안수도 안 받았으니까 목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이나 12제자나 사도들도 다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목사안수도 안받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목회를 잘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침례교나 나사렛 교단은 신학교 나오지 않아도 목회할 수 있도록 헌법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때 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지만 한국식으로 합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이 한국법을 주장하면 예수님이나 그 12제자나 다른 사도들이 다시 오셔도 목회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들에 대한 미국 교단들의 법은 더 성경적입니다.
성경에는 신학교를 나와 안수를 받아야 목회를 할 수 있다고 기록해 놓은 곳은 없습니다.
저는 신학교육이 불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학교를 나와 목사 안수를 받지 않으면 목회를 할 수 없다는 한국법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도 깨닫지 못하고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전혀 성장되어 있지 않으면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목회를 한다는 것은 개인이나 교회에 하나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그 후 5년간 목회하면서 트레베카 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01년에 나사렛 교단 테네씨 교구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가끔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3) 예수님의 마지막 대답 (8):
교활하게 예수님의 질문을 회피한 제사장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쳤으니 이제 진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세례 요한에 대한 불신을 회개하고 자백했더라면 예수님의 참 귄세에 대해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세를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죄를 다 사해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교만 때문에 모든 기회를 다 놓쳤습니다.
우리도 성경이나 예수님께 대해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대답을 당장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자백할 죄나 교만을 지적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 때에 변명하지 마십시다.
성령님의 지적을 회피하지 마십시다.
겸손히 주님께 자백할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에 대해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말씀이 은혜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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