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모퉁이의 머릿돌 (눅 20:9-19)

서론: 지난 주일에는 눅 20:1-8을 본문으로해서 ‘예수님의 권세’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매일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시니, 제사장 무리들이 와서 예수님께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것들을 가르치며, 누가 이 권세를 주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우주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불신과 교만으로 찬 그런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진리에 대해 가르쳐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도 일상 생활에서 예수님을 우리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진리에 대해 배울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께서 주인으로 계시지 않으면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가 타성에 젖으면 예수님께서 이 우주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살 수가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권세를 우리 생활에서는 인정하지 못하고 살 때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의 설교를 통해 우리의 생활에서도 정말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분을 생활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20:9-19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원 주인과 그 농부들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 악한 농부들은 믿지 않는 이스라엘 자손입니다.
이 비유의 마지막에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표현했습니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서에 예언된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머릿돌로 표현된 의미가 무엇인지 또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1) 악한 농부들 (9-16): 9. 한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 그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었습니다.
농부들은 그 포도원을 경작하여 소출을 얻어 그 얼마를 주인에게 주어야 합니다.
사실 농부들은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들은 포도원이 없었는데 주인의 포도원을 받아 경작할 땅이 생겼으니 감사할 일입니다.
10. 그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주인이 세를 받으려고 사람을 보냈을 때에 당연히 세를 바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악한 농부들은 세를 바치기 싫어서 주인이 보낸 종을 심히 때리고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은혜를 배반하는 행동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그들이 받은 복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예수님을 영접지 않았습니다.
이 농부들이 아주 악한 것 같은데 실은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은혜를 받고난 다음에 그 은혜를 배반하고 오히려 도움준 사람을 비방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지난 번에도 비슷한 설교를 하고나니 우리들 중에서도 이런 일을 당한 분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치 않고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11. 두 번째로 사람을 다시 보냈는데, 그 종도 심히 때리고 또 능욕도 하고빈손으로 보냈습니다.
농부들의 행동이 점점 더 악해집니다.
12. 다시 세 번째로 사람을 보냅니다.
주인의 인내심이 참 많습니다.
세 번째 종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많은 선지자들과 사사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전하는 내용은 너희를 창조하시고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의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고,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도 보내시고 사무엘도 보내시고 이사야도 보내시고 예레미야도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선지자들을 거역하고, 박해하고, 죽이기까지했습니다.
13. 결국 그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보내면 혹시 그 농부들이 공경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4. 그런데 농부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라고 의논했습니다.
상속자를 죽이면 그 포도원이 자기들의 것이 되겠습니까?
악한 인간들은 항상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에게 짐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들로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 10:12-13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바로 그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 10:12-13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공경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5. 그래서 농부들은 그 아들을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습니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포도원을 그 농부들에게 유업으로 주겠습니까?
16. 그 주인이 와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면 하나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들었습니까?
오히려 저주를 받아 그 후손들이 로마군인들에게 죽고 이스라엘은 나라 없이 2천년을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대로 그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악한 농부가 되지 맙시다.
어떻게 하면 악한 농부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마음에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그것이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면 그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이 될 것입니다.

2) 머릿돌 (17-19): 17.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그 악한 농부들이 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함은 어찜이뇨?”
원래 이 말씀은 시 118:22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건축의 전문가들이 한 돌을 보고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고 버렸는데, 그 돌이 나중에 큰 집을 짓는데 사용되는 모퉁이돌 즉, 기초석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잘 알고 있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보고 별로 귀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버렸는데, 그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할 근원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18. 이 말씀은 믿지 않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거역하고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한 것인 줄 다 알았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할 생각은 않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으나 백성들이 겁나 그만두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구원이라는 건축물을 이루시는 기초석입니다.
이사야 28:16에 그 말씀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 돌을 믿는자는 급절하게 되지 않을 것, 즉 급하고 절막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심판 때에 급절한 상황, 즉 정죄를 받지 않고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를 받고 지옥에 가는 것이 그 인간이 죄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죄 있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다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 죄가 다 용서된 것입니다.
그러니 한 사람이 지옥가는 것은 죄가 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벧전 2:6-9에 오늘의 본문과 잘 연결된 말씀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돌을 시온에 두는데,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그 돌이 보배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 돌이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치 않았기 때문에 넘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퉁이 돌이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바로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무료로 왕같은 제사장을 삼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이 복음전파에 힘써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도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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