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과부의 두 렙돈 (눅 21:1-4)

서론: 지난 주일에는 눅 20:41-47을 본문으로해서 ‘예수님의 정체성’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구원자 즉 우리의 메시야,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실뿐만 아니라, 성령님으로서 지금도 우리의 생활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은 예수님이라야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이 예수님으로부터 벗어나서 다른 물건이나 다른 사상에 집착하게 되면 바리새인들처럼 위선하기 쉽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도는 길게하고 거짓말을 잘하고 행동은 엉망으로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알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정상적이 됩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에 저희들이 배운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21:1-4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문에서 부자들이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신 후에 사람들에게,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돈은 인간생활에 매우 중요한 물건이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을 통해 성경에서 보여주시는 연보에 대한 역사와 연보에 대한 우리의 바른 태도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1) 구약의 제사와 연보제도: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으로 하나님께 드리려는 것은 하나의 본능과 같은 것입니다. 창 4:1-4을 보시면 인류 최초로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자신의 농사지은것과 양떼 중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받으셨는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이나 받으시는 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벨이 양의 피로 제사를 드린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제사드리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창 14:17-20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서 자신의 전리물 중에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이라는 왕이요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드린 기록이 나옵니다. 그때부터 십일조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밧단 아람으로 도망하면서 루스라는 성에 이르러 밤에 자다가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 서원하면서 그곳에 성전을 짓고 자기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창 28:20-22에 약속했습니다. 야곱이 이 두 약속을 지켰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을 지으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그때 백성들이 성막건축을 위해 정성껏 연보햇다는 기록이 출 35:20-22, 36:3-7에 나옵니다. 백성들이 연보를 너무 많이 가져와서 모세가 그만 연보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한참 후에 유다 왕 요아스 때에 성전을 수리하기 위해 성전 앞에 연보궤를 놓은 기록이 대하 24:8에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연보를 드리려면 성전에 와서 연보궤에 연보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때까지 그 전통이 이어진 것입니다. 요즘 교회들에서 시행하고 있는 연보 주머니나 접시를 돌리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 타락한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도 행하지 않았던 행동들입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서 정한 연보의 종류가 28가지가 있다는 것을 어떤 교회 웹사이트에 발표한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 목회자들이 교인들로부터 돈을 걷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한 것 같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연보 주머니를 돌리는 폐단은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보는 자발적으로 바치는 것이어야 좋습니다.

2) 두 렙돈 (1-4): 1. 요아스 왕 때의 전통대로 예수님 당시에도 연보궤를 성전 앞에 설치해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 옆에서 사람들이 보면 연보궤에 얼마를 넣는지 다 보였던 모양입니다. 특히 부자들은 연보할 때 자신이 많이 넣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천천히 넣으면서 돈도 좀 보이도록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연보를 많이 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헌금봉투도 마련하고, 누가 무슨 헌금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를 발표하기도 하고 심지어 교회 뒤에 십일조 현황표를 만들어 사람들의 연보실적을 공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 맞추어 교인들도 서로 연보 많이 해서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려고 열심히 연보합니다. 그러한 현상은 목회자와 교인의 타락된 정도를 나타내는 좋은 지표입니다. 교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연보 많이 하고 목회자는 그 타락된 심리를 이용하여 연보 많이 하도록 인간적 방법을 사용합니다. 2. 한 과부가 두 렙돈을 넣으면서 약간 부끄러워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 렙돈은 로마의 최소 구리 동전으로 지금의 약 1달러가 되는 돈입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의 평가는 전혀 예상 밖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가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연보했다고 하셨습니다. 인간들 생각에는 많은 액수를 연보하는 것이 많이 연보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연보 액수에 관계없이 연보하는사람의 마음과 형편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리고는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그 과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2달러 정도의 돈으로 하루를 살려고 했는데, 자기 끼니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연보를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돈 액수보다 그 사람 재산의 비율에 맞추어 얼마나 연보했는지를 계산하셨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고 평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가를 보시고 평가하십니다. 저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어릴 때의 연보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우리 형제 자매님들께는 연보에 대한 부담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런데 복음전파와 교회 운영을 위해서는 금전적인 필요가 생깁니다. 또한 은혜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 또한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아놓는 수단으로 연보하는 것이 참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번 돈은 내가 다 쓴다라는 사고방식은 죄라고 생각합니다.

3) 연보에 대한 지침: 오늘의 본문과 연결하여 연보에 대한 몇가지 지침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연보에 대한 마음입니다. 다윗이 대상 29:14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기도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구나. 내가 그 가운데서 일부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큰 복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둘째는 고후 9:6-7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능하면 많은 연보를 하되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할 것입니다. 억지로 연보하는 것은 별로입니다. 셋째로 딤전 6:17-18입니다.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교만하지 말고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선한 일을 좋아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을 동정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 6:21에서, “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보물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를 점검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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