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영적 부모 (고전 4:14-21) 

 

서론: 지난 주일에는 고전 4:1-13을 본문으로해서 ‘받은 자의 태도’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희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물질적, 정신적, 영적 축복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특히 영적인 사명을 받은 사람들에게 몇가지 권고를 했습니다. 첫째는 성실함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은 그 일이 좋든지 싫든지 성실하게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나 힘들면 하기 싫고 그만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명을 생각하면 주어진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랑하면 사람들도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대적하십니다. 세번째는 자아를 버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대인관계는 자아문제 때문에 생깁니다. 바울은 주님의 복음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바보처럼 사역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고전 4:14-21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권면도 하고 책망도 하면서 그 이유가 바울이 그들에게 전도하여 영적인 부모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부모와 자식 관계가 있듯이 영적으로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있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해 그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면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영적으로 우리가 그 사람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제법 중요한 관계가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제시하고 있는 이 영적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대한 원리를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1) 복음으로 낳은 자녀 (14-15): 14. 앞의 부분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보고 자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리석고 약하고 비천하지만 너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강하고 지혜롭고 존귀하다고 말하고 나니 조금은 비꼬는 것도 있고 또 민망하니까 14절의 말씀을 쓴 것입니다. 바울이 그런 말을 쓴 이유가 고린도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이니까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권고하듯이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하는 말이라고 일러 줍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지만 영적으로 맺어진 관계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예전에 잘 몰랐어도 복음을 깨달은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 때문에 금방 친해지고 그 관계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도 제게 복음을 전해준 그 선배님과 제가 복음을 깨닫고 바로 전해 예수님을 믿은 형제들과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고 제 인생에 있어서 그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삽니다. 15.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침을 받은 선배나 교사들은 많이 있을 수 있지만 영적 부모는 대개 한명 밖에 없습니다. 가끔 두 명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영적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복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제시하여 그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어 영적으로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받으면, 영적으로 부모 자식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런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대개 자기가 복음을 전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각 사람이 나의 영적인 부모가 누구며 나의 영적인 자녀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2) 부모를 본받음 (16-17): 16. 구약이나 신약의 모든 저자를 통해,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한 사람은 바울 밖에 없습니다. 바울의 이말은 오해를 할 수도 있는데 고전 11:1을 보시면 이해가 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바울을 본받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으로도 자식이 부모를 본받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잘된 경우는 거의 그렇습디다. 저도 제게 복음을 전해준 그 선배와 여러면에서 닮은점이 많습니다. 또 제가 복음을 전한 사람들도 저와 신앙노선이 굉장히 비슷합니다. 바울도 디모데가 누구에게 성경을 배웠는가를 상당히 강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딤후 3:14). 기도하는 것도 거의 닮습니다. 17.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을 닮아가는 것을 도우기 위해 디모데를 다시 고린도에 보내어 바울이 각처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다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디모데를 설명하면서 신실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에 유의하십시다. 디모데도 바울을 닮아 복음을 위해서라며 모든 것을 희생하고 신실하게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우리 새 생명 교회 형제 자매님들도 복음을 위한 바울의 열정과 그 희생을 본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사랑과 매 (18-21): 18. 지금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고 고린도는 에베소에서 좀 떨어져 있으니 고린도 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아 바울은 이제 떨어져 있으니 다시 고린도에 안오겠구나. 그러니 우리 마음대로 하자.”고 생각하고 교만하게 행동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별로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9. 그렇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바울이 다시 고린도를 방문하겠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에 가면 교만한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경고합니다. 정말 그 사람이 복음을 정확히 전할 수 있으며,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 하는 실제적인 능력을 알아보겠다는 말입니다.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말만 잘하는 것은 별로입니다. 실제로 복음을 전하고 병이 걸렸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병도 낫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는 말을 잘 하는데 복음전하라고 하면 입이 딱 막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21. 바울은 그 교만한 형제들이 속히 자백하고 그들의 행동을 바꾸기를 원해서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 부모는 보통은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하고 가끔은 매로 때리기도 해야 합니다. 육신의 애들도 항상 잘 해주기만 하면 애들 다 버립니다. 항상 매만 때려도 안됩니다. 두 가지를 잘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분과 우리가 복음을 전한 분에 대해 생각해보고, 영적 부모들을 닮아 그리스도에게 까지 장성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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