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예수님의 고난과 증거 (눅 22:63-71)

서론: 2주 전에는 눅 22:47-62을 본문으로해서 ‘베드로와 가롯 유다’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야외 예배를 갔기 때문에 강해 순서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 때, 대제사장들과 의논하고 계획적으로 일들을 진행시켰습니다. 나중에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는 자신의 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예수님 판 돈을 성전에 던지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베드로의 실수도 가롯 유다의 잘못보다 그리 적은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3년간 모시던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했으니 그 잘못도 아주 큰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예수님의 예언대로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우리도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말고 예수님께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2주 전에 저희들이 배운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22:63-71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맞고 모욕을 당하는 장면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한 중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당신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기회를 만들어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예수님의 고난 (63-65): 63. 예수님을 대제사장 집으로 잡아간 다음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렸습니다. 이 때리는 행동이 그냥 손으로 살살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무자비하게 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이런 모욕과 구타를 당한 것입니다. 64.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눈을 가리우고 묻습니다, “선지자 노릇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네가 정말 선지자라면 눈을 가리우고도 누가 너를 친 사람인지 알 것이 아니냐? 이런 조롱의 말을 한 것입니다.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 53:7-8을 보시면 예수님은 곤욕을 당할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고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처럼 고통을 당하신 이유는 마땅히 형벌을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히 5:8-9에서는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고통은 받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면 그 뜻에 순종해서 고난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형제 자매님들 중에 주님을 위해 고난 당하는 분이 계십니까? 고난 그 자체는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라면 그 분께 순종하면서, 그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입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 고난받기를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는 고난도 감수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돈벌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다 장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난을 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은 굉장히 싫어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우리를 위해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사실 주님을 위해 고난 당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어릴 때 주일날 놀러 못 가고 교회를 가야하니 그것을 억지로 고난당한 것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때에 제가 교회를 나갔기 때문에 아주 나쁜 행동을 안하고, 바르게 사는데 도움이 되었으니 그것을 고난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군대갔을 때에 주님 때문에 거짓말 안하려고 하다가 약간 위험한 일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제가 나중에 큰 덕을 보았으니, 그것을 주님을 위한 고난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제법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초창기에 일어났던 일이나, 3-4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은, 만약 제가 목회를 하지 않았더라면 당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성인 비디오 가게를 하건 말건 제가 목회자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그 분이 제게 성인 비디오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그러한 일에 개입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내가 주님을 위해 고난 당한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또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어떻게 희생하고 고난을 당하고 섬기는 기회를 가질 것인가 생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축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 복을 다른 사람과도 나누기 위해 희생을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섬기는 삶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 자매님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2) 예수님의 증거 (66-71): 66. 예수님께서 많은 고통을 당하시는 사이에 날이 밝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 예수님을 공회, 즉 산헤드린이란 최고의회에 끌고 갔습니다. 67. 그리고는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네가 그리스도여든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님께서 그렇다고 말하신들 이 사람들이 듣고 믿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68. 그래서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69. 그러나 그들의 불신에 대한 경고는 해주셨습니다.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증거입니다. 70. 그러니까 대제사장들이 묻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답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하면 유대인의 법에 따라 사형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신성 모독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대답이 예수님의 죽음을 결정짓는 대답이었습니다. 71. 대제사장들이 말합니다,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그들의 생각으로는 신성모독의 죄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잡은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세주라고 전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전하라고 하면 여러 가지 핑게를 대고 복음 안전합니다. 이렇게 전하면 무례한 것이고 남의 사생활 간섭하는 것이고, 또 저렇게 전하면 비효과적이라고 하면서 평생 복음 못 전합니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려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순식간에 세계 만국에 복음을 전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비효과적으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네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내용을 타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는 미련한 것입니다 (고전 1:21). 우리는 순수하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신약 교회 2천년간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주후 20-30년 사이에 전세계가 다 복음화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실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복음전하는 것이 우리 개인과 교회의 사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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