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바라바는 놓아주고 (눅 23:13-25)

서론: 지난 주일에는 눅 23:1-12을 본문으로해서 ‘빌라도와 헤롯’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자신들의 구세주인 예수님을 고소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은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하게 될 것입니다. 넓게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하기 때문에 그 순서대로 되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악한 결정들을 내린 사람들에게는 그 행위에 대한 댓가가 내려질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온 사람인 줄 알고 당시에 예루살렘에 와 있던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내었습니다. 갈릴리 지방의 왕인 헤롯 안디바가 예수님을 보고 기뻐한 이유는 예수님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혹시 자기가 죽였던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을 통해 무슨 기적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이 얻으려던 것을 얻지 못하니까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예수님을 희롱한 뒤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이 두 악한 사람이 전에는 원수였으나 악한 일을 위해 그날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악한 일에 동참하는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지난 주일에 배웠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23:13-25입니다. 유대인들의 거센 요구에 굴복해서 빌라도는 결국 예수님을 죽이게 하고, 대신 바라바를 놓아주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결정을 잘못 내리면 큰 낭패를 당한다는 사실과, 또 바라바의 놓임을 통해 복음의 원리를 배우게 되길 바랍니다.

1) 빌라도의 의도 (13-17): 13. 백성들이 예수님을 고소하니까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았습니다. 14. 그는 자신이 조사한 바로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15. 또한 예수님을 헤롯에게로 보내었으나 헤롯 역시 죄를 찾지 못하고 예수님을 자기에게 도로 돌려 보내었으니, 예수님의 행한 일에서 죽음에 해당되는 죄를 찾지 못했다고 선언했습니다. 16. 확실한 것은 빌라도의 의도는 예수님을 줄일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때려서 놓아 주려고 했습니다. 17. 한글 번역에는 17절이 없다고 되어 있지만 다른 번역들에 보면, “이제 명절 (유월절) 이 되면 총독이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 기회를 통해 예수님을 사면해 주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들이 보았듯이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총독으로서 죄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한 인간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또한 빌라도는 앞날이 촉망되는 사람으로서 장차 로마 황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답니다. 이제 곧 황제가 될 사람이 총독 재임기간 중 무죄한 사람을 죽였다는 기록을 남기면 좋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반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됩니다.

2) 유대인의 요구 (18-23): 18. 유대인들이 일제히 소리지릅니다, “예수를 죽이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19절에는 바라바가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 때문에 옥에 갇힌 자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사람은 유대의 열심당원으로서 로마에 대항했던 사람이랍니다. 20.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주려고 두 번째 시도합니다. 21. 그러나 유대인들은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22. 빌라도가 세 번째 예수님을 놓으려고 시도합니다.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으니 때려서 놓겠노라.”라고 말합니다. 23. 그러나 유대인 무리들은 큰 소리로 재촉하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합니다. 요 19:12-15를 보시면, 유대인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 주면 로마 황제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빌라도가 가장 중요시하는 로마 황제 가이사를 끌고 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데리고 나오면서, “보라 너희 왕이로다.”고 하니까,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자기 민족의 이익과 상반되는 말을 합니다. 마 27:23-25을 보면 빌라도가 민란을 두려워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하는 수 없이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기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무죄함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그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라고 말입니다. 몇 몇 성경학자들은 이들의 그 말이 약 40년 후에 있을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분들은 유대인들의 이 말이 약 1900년 후에 있었던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연결시키기도 합니다만 저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의 소리가 빌라도를 이겼습니다. 

3) 바라바는 놓아 주고 (24-25): 24.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원하는대로 판결을 내립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 무죄한 예수님의 피를 흘리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을 놓아 주기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정은 자신의 양심과 반대되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25. 그래서 마땅히 죽어야 할 바라바는 놓아 주고 무죄한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 주었습니다. 원래는 바라바가 죽어야 되는데 대신에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바라바는 살아나고 그 자리에 대신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마치 마땅히 죽어야 될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죽으신 원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바라바는 복음의 원리를 몸으로 경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복음의 원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로마의 역사학자 요세비우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예수님의 죽으신 2년 후에 사마리아 폭동으로인한 대학살에 연류되어 로마로 소환되어 결국 자살했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적 출세를 위해 양심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죽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시하던 정치적 출세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2년 후에 자살할 줄 알았다면 자신의 양심을 무시해 가면서 예수님의 무죄한 피를 흘렸겠습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을 하면서 까지 그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고해서 그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설사 그 목적을 이룬다고 해도 더 큰 것을 잃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 형제 자매님들 중에 돈이나, 명예나, 공부나 출세를 위해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우리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그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시 37:5-6). 또한 저는 유대인들, 특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왜 이토록 싫어했던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위선과 비행을 지적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증오했습니다 (마 23:1-39). 차라리 강도질을 한 바라바는 받아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라바는 자신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인간의 심리입니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일들이 일어났을 때 그 일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악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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