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삭개오의 변화 (눅 19:1-10)


서론: 지난 주일에는 눅 18:31-43을 본문으로해서 ‘두 종류의 소경’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져 예수님께서 복음에 대해 말씀하셔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들도 그 쉬운 복음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셨어도 그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다른 말씀에 대해서도 눈이 어두우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지말라는 경고에 대해서도, 교만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서도 자신을 돌아볼 눈이 없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만난 육신의 눈이 어두운 소경은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자신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서 예수님께 내어놓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내 자신의 처지를 알고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내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눈을 떠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으면, 내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에 우리가 배운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19:1-10입니다.

그 유명한 삭개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며 아주 부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 인생관이 변했습니다.

자신의 재산 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혹시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 배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이 변화된 삭개오의 행동을 통해 우리도 자신의 행동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 (1-6):
1.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약 18마일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통과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이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입니다.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려는 것입니다.

2.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세리장이며 부자가 한 사람있었습니다.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고 돈을 많이 모은 사람입니다.

3.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지만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어쩔 수 없었습니다.

4. 할 수 없이 예수님께서 지나가는 길 가의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나보기 원했습니다.

그는 약간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예수님을 만나기 원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갈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이 갈급하면 약간의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예수님을 뵙기 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간절히 찾으면 예수님께서 만나주실 것입니다.

5. 예수님께서 그 나무 아래로 지나가시다가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6. 삭개오가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삭개오가 간절히 예수님을 만나기 원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님을 간절히 만나기 원하면 예수님께서 어떤 경우에서도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2) 삭개오의 변화 (7-10): 7.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으로 들어가시니, 사람들이 수근거립니다.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시니 비난한 것입니다.

8. 삭개오는 다른 사람들의 수근거림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자신의 결심을 말합니다, “주여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삭개오가 돈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자신의 민족과 나라를 배반하면서까지 돈을 모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개의치 않고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자신의 욕심을 채운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유 절반을 내어놓겠답니다.

뿐만 아니라 혹시 다른 사람을 속인 것이 있으면 4배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세리장이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였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삭개오의 재산이 다 없어졌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왜 이런 행동을 했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을 알고나니 너무 기뻐서 그랬습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돈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가장 귀한 것을 찾으면 덜 귀한 것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지금 가진 재산을 다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마 13:44-46을 보시면 천국의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전혀 아깝게 생각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이 일을 자발적으로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삭개오에게 전혀 돈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셨고 다른 어떤 사람도 그에게 돈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자연히 그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몇 주전에 눅 18:18 이하에서 읽은 부자 관원과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부자 관원은 영생을 받고 싶었지만 돈이 아까워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저절로 돈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 두 사람의 차이입니다.

9.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반응을 보시고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님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 잘 압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행동과 가치관이 변한 것을 보면 그 사람이 구원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부자 관원처럼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삭개오처럼 잃어버렸다가 겸손히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무엇이 변했습니까?

가치관도 그대로 있고, 행동도 전혀 변하지 않고, 그냥 예수님을 악세사리 정도로 하나 더 받아들인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신은 전혀 변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무언가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만 기도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집에 아들이 둘 있는데, 하루는 한 아들이 제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합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아들된 것을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아버지를 참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를 위해서는 전혀 희생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저의 영적 성장을 위해 성경을 읽으라고 하지만 저는 성경 잀는 것이 귀찮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하는 것을 원하지만 나는 귀찮아 공부 안하겠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건강을 위해 내가 술먹고 담배 피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18세가 넘었으니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내 용돈이 좀 더 필요합니다.

지금 내게 한달에 100불을 주는데 앞으로는 300불을 주십시요.”

그러면 제가 무어라하겠습니까?

“네가 죽고 싶은 것이냐?” 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저의 모든 죄를 완전히 다 사해주시고, 제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저를 자녀로 삼아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을 위해서는 전혀 희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복음 전하는 것을 너무 원하시지만 그것은 저를 무안하게 만드는 것이니 저는 복음은 안 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를 금하셨지만 그것은 저의 기호품이니 간섭하지 마십시요.

주님은 저의 행복을 위해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저는 주님을 무시하고 돈을 사랑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님 제가 지금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축복해주셔서 사업이 번창하게 해 주십시요.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십시요.”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시니 제가 제 아들에게 하듯 그런 말씀은 안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라 상상했습니다.

“그래 너의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마. 하루만 기다려라.”

벧후 3:8을 보시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천년 후에 들어주실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었다고 다 삭개오처럼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 사도 바울처럼 변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마다 변화하는 정도도 다르고 시간도 다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은 변화합니다.

우선 예수님께 대한 태도가 바뀝니다.

전에는 예수님을 소크라테스, 부처, 공자님과 함께 4대 성인 정도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시요 생활에서의 주인입니다.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뀝니다.

전에는 모든 일에 내가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주님께서 내 인생의 중심이 됩니다.

전에는 세상을 사랑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합니다.

이것은 큰 변화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활습관과 성품도 바뀔 것입니다.

전에는 내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주님 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삽니다.

이런 변화가 전혀 없는 분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마음에 모셨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가 매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과 매일 갚은 교제를 가질 때, 우리는 주님을 닮아 변해 갈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도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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