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예수님의 정체성 (눅 20:41-47)

서론: 지난 주일에는 눅 20:27-40을 본문으로해서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상식의 수준에서 제한하여 생각했습니다. 가상적인 상황을 만들어 예수님을 곤궁에 빠뜨리려고 시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함으로 오해함이 아니냐?”라고 반문하시면서 천국에 가면 결혼하는 일이 없고 하나님의 자녀로 천사들과 같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고정관념에 속박시켜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산 자나 죽은 자나 다 드러납니다. 죽음이 하나님을 제한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모든 사고방식과 행동과 의사결정을 살펴보시고 간섭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고집대로 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순간 순간 우리가 하나님께 진실하게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 주일에 배운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20:41-47입니다.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십니다. 그리고는 서기관들의 교만과 위선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과연 누구신가에 대해 배우고, 또 서기관들의 교만과 위선을 보고 경고를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사람들의 생각 (41): 당시의 서기관들과 일반 유대인들은 메시야, 즉, 구원자가 다윗의 자손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 11:1-9, 렘 23:5-6, 33:14-18 등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다윗의 자손 중에서 한 왕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도 몇 번 예수님께 대해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 9:27, 15:22).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적도 행하시고 병자도 고치시고 하니까사람들이 예수님을 그 메시야, 즉 그리스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기관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에서 다윗이 인간이니까 그리스도도 인간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무시하고 인간이라는 면에 촛점을 맞추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무지를 깨우치려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여주시는 그리스도의 본체에 대해 무지하면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상식에 비추어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경향성입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는 것도 가만히 보면 다 자기 성격대로 신앙생활합니다.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은 신앙생활도 적극적으로 합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은 또 조용하게 신앙생활합니다. 주님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만 신앙생활 잘 한다고 착각하고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대적하십니다.

2)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42-44): 42. 바리새인들인 서기관들의 오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단순히 다윗의 자손만은 아니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마 22:43-44을 보시면 다윗이 성령님께 감동되어 시 110:1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한 것이 나옵니다. “주께서 내 주에게 이르시되. . ”, 당시 다윗은 삼위일체에 대해 잘 몰랐으니까, 요즘식으로 한다면,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께 이르시되. .” 이런 말씀입니다. 43.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 즉 예수님께, “내가 네 원수들을 다 심판할 때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있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때까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는 것입니다. 44. 다윗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를 보면서 그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자기보다 28대나 후에 태어난 사람을 주님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리스도는 단순히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런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빌 2:5-6). 그분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분이 곧 하나님이시며, 모든 만물을 다 지으신 분입니다 (요 1:1-3). 오늘 야외에서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그 예수님은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요 14:6). 누구든지 그 예수님을 마음에 구세주로 영접만 하면 죄를 영원히 다 사함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이외에 어떤 다른 것도 우리 신앙의 중심이 되면 위험합니다. 구원파 같은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서는 분명한데 가만히 보면 그 신앙의 중심이 귀신 쫓아내는 것입니다. 이 사람도 귀신 들렸고 저 사람도 귀신들렸고, 다 귀신들린 사람들만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서 거듭난 사람이 마귀의 세력에 넘겨지는 경우는 고전 5:1-6에서 나오는 교회에서 음행을 하여 출교당한 사람 정도입니다. 또, 우리가 거짓말할 때는 마귀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의 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의 손이 붙드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붙들고 계십니다. 그런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3) 서기관들의 위선 (45-47): 45. 막 12:37을 보시면 예수님의 말씀을 백성들이 즐겁게 듣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의 위선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지난 주일에 배웠듯이 서기관들은 주로 바리새인들이 많은데,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을 꾸중하시니까 기분이 좋아서 예수님께 아첨했던 사람들입니다. 46.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외모를 중시하고, 사람들에게 대접받으려 하고, 어디가든지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합니다. 47. 겉으로는 경건한 것 같은데 속은 어떻습니까? 과부의 재산을 삼킵니다. 사기친다는 말입니다. 거기다가 기도나 좀 짧게 하면 덜 위선적이지요. 위선적으로 길게 기도합니다. 기도 이야기가 나왔으니 기도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특히 함께 모여 기도할 때에는 너무 큰 소리로 기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큰 소리로 길게 기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도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기도 길게하고 결정 엉망으로 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결정할 때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합심기도할 때, 조용히 소리내지 않고 기도합니다. 잡생각도 좀 들때가 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 다 아십니다. 위선은 결국 거짓말입니다. 경건하지 않으면서 경건한 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확실히 알면 위선 잘 안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보고계시는데 어떻게 위선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이 은혜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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