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베드로와 가롯 유다 (눅 22:47-62)

서론: 지난 주일에는 눅 22:35-46을 본문으로해서 ‘예수님의 기도’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가올 어려움을 위해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준비하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것을 육신적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돈을 넣는 전대와 양식을 넣는 자루와 자기보호를 위한 칼을 준비하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다가올 어려움을 대비해 기도로 준비하여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려움을 앞에 두고 기도할 때 예수님은 당신의 원대로 되기 보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기도드릴 때에 이런 태도로 기도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 원하는 기도가 가장 성숙하고 또 지혜로운 기도입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에 저희들이 배운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22:47-62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롯 유다에게 배반을 당해 대제사장들과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잡혀가시는 광경과 대제사장의 집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예언대로 닭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광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슴아픈 사건들입니다. 한 사건이 일어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태도로 보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사건을 읽으면서 우리는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베드로와 같은 태도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실수를 안하면 참 좋습니다. 그러나 혹시 실수를 할 때 다시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1) 가롯 유다의 배반 (47-53): 47.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이제 고난을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로 깨어 있어서 앞으로 다가올 환난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제자들은 그 동안 자고 있었으니 전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곧 들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려 오는 무리들 앞에 가롯 유다가 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48. 마 26:48을 보시면 가롯 유다가 이미 무리들에게 내가 입을 맞추는 자가 예수다 라고 군호를 짰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인사는 진짜 인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잡기 위한 신호였습니다. 악한 일을 계획대로 진행하는 가롯 유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유다가 예수님께 회개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49. 이러한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준비되지 않은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본성에 따라 일을 처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죽었다고 말은 하지만 어떤 상황을 만나면 자기 본성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50. 자기들에게 있는 칼을 가지고 그 무리 중 한 사람에게 내리쳤습니다. 어부들이니까 칼 쓰는 것이 그리 정확하지 못했습니다. 머리를 친다는 것이 오른쪽 귀만 쳤습니다. 51. 예수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하시고는 그 사람의 귀를 낫게해 주셨습니다. 마 26:51-54를 보시면 그때의 상황이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순종하신 것입니다. 52. 대제사장들에게서 온 무리는 예수님을 잡을 때에 인간적으로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습니다. 53 어두움의 권세 아래에서는 인간적 방법이 동원됩니다. 한국교회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 인간적인 방법들이 동원되는 것을 보아왔는데, 가슴 아픈 일입니다. 가롯 유다의 배신은 실수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계획에 의해 진행된 사건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배반하려고 계획적으로 접근하여 예수님을 관원들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마 27:3-5을 보시면 가롯 유다는 스승을 판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알았을 때,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지 않고 스스로 뉘우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2) 베드로의 실수 (54-62): 54. 이제 베드로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갑니다. 기도로 준비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겁이 나서 예수님 가까이 가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혈기로 제사장 종의 귀를 칠 때는 용기가 있었는 것 같았는데, 정작 예수님이 잡혀 가시니 비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힘을 잃으면 비겁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용감해야 될 때에 용감하지 못합니다. 55. 사람들이 뜰에서 불을 피우고 있으니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섞여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척 했습니다. 예수님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숨깁니다. 우리도 혹시 이런 비겁한 짓을 하지는 않는지 점검해 봅시다. 56. 한 어린 계집종이 베드로를 보고 말합니다,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다.”라고 말입니다. 57. 비겁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3년간 주님으로 따라다녔고, 예수님과 함께 감옥에도 죽는 곳에도 따라가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가 한 계집 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경우가 있지나 않은지 살펴봅시다. 혹은 우리의 조그만 유익 때문에 예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봅시다. 막 14:68 난하주에 보면 아마 이때에 닭이 한 번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도 못했습니다. 58. 조금 후에 다른 한 사람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너도 그 당이라.”고 말했습니다. 마 26:72에보시면 베드로가 맹세하고 부인했습니다. 더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사람이 한 번 거짓말하기 시작하면 자꾸 빠져들어갑니다. 59.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고 말했습니다,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라고 말입니다. 요 18:26을 보시면 그 사람은 베드로가 귀를 베어버린 말고라는 사람의 친척이어서 베드로를 자세히 본 사람입니다. 60. 베드로가 세 번째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마 26:73-74를 보시면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부인입니다. 그때 곧 닭이 울었습니다. 61. 또 예수님께서 그 잡히신 중에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네가 오늘 닭 우리기 전에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눅 22:34). 우리가 실수할 때, 혹은 죄를 범했을 때, 말씀으로 돌아가야 됨을 보여주십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통곡할 만 합니다. 베드로가 이때에 회개하였음이 거의 틀림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다시 돌이켜 다른 형제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가 되어 주님과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분명히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행 15:6-11). 참고로 요 21:15-17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신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베드로의 부인은 가롯 유다의 배반과 그 강도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 다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고 베드로는 믿음으로 말씀에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가롯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점에 대해 배웁시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주님을 부인했을 때, 혹은 큰 실수를 했을 때,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 오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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