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겸손의 원리 (눅 18:9-17 1-8)


서론: 지난 주일에는 눅 18:1-8을 본문으로해서 ‘기도의 원리’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비유를 읽을 때에는 그 비유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주의해야 합니다. 비유에 나오는 모든 문항들을 적용하려는 것은 무리입니다. 지난 주일의 본문의 비유는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그 분의 성실하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적 영적 축복보다는 그 분 자체를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그 분자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 믿음의 창조자시며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보시켜 나가는 과정임을 아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18:9-17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기도에 대해 교훈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대상이 다릅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뒤에 보시면 그 사람들은 바로 바리새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가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했습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바리새인들처럼 교만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겸손의 원리'라고 정했습니다.

1) 비유의 대상 (9):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믿었습니다. 외적으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율법을 지키면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자키는 그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나는 율법을 이렇게 잘 지키는데 왜 너는 지키지 못하는가?”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 예수님 보시기에 좋지 않게 보였습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가진 사람들이 안 가진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깁니다. 돈이 있고, 명예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멸시할 때 우리는 분노를 느낍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만하다는 것을 다 알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뒤에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 두 사람의 기도 (10-13):
10.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 갔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대체로 잘 지켰고, 교육도 잘 받았고, 스스로 의롭다고 믿었습니다. 세리는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지배국인 로마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국민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서는 자신이 얼마를 착취하고 그 나머지는 로마에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1.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자기 자신에 관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릅니다. 토색, 불의, 간음하는 사람들 하고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세리와도 다른 것을 감사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말은 감사한다고 했지만, 실은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교만으로 가득찬 기도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하면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세계에서 최고가 되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저도 어릴 때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었습니다. 그냥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제일 귀한 일입니다.
12. 바리새인은 자기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합니다. 금식도 하고 십일조도 바칩니다. 세리들은 그렇게 못하니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세리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모릅니다. 금식의 원래 의미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힘이 없으니 자신의 무능함을 알게 됩니다. 십일조도, 나의 모든 소유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행동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제가 그 중에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립니다.” 그 뜻입니다. 금식이나 십일조가 우리의 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십일조하는 분들을 믿음 좋다고 칭찬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전철을 밟는 것입니다.
13. 반면 세리는 하나님 앞에 눈을 들지 못합니다. 가슴을 치며 자기가 죄인인 것을 자백합니다. 요즘 세리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요즘 세무 공직자들은 그것도 권력이라고 잘난 체 합니다. 시편 51:17을 보시면,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항상, “주님 저는 원래 죄인이었습니다. 이 죄인을 예수님의 피로 영원히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3) 겸손의 원리 (14-17):
14. 이 두 사람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의롭다고 하시겠습니까?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는 바리새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벧전 5:5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자백하는 세리를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15. 마침 그때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제자들은 당시의 습관의 따라 아이들을 꾸짖었습니다.
1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마 18:2-4을 보시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먼저 태어나야 합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곧 어린아이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 다음에 “어린아이들처럼 자기를 낮추어야 천국에서 큰자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7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겸손은 흉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겸손해야지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겸손해야 겸손한 것이 나타납니다. 어떻게 겸손할 수 있는냐 하면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내 자신도 구원할 수 없는 죄인이구나. 예수님의 피로써만이 내가 구원을 얻었구나를 깨달아야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교만할 필요가 없음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한 분이시니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원리입니다.
사람도 자주 만나면 그 사람을 닮아갑니다. 부부가 오래 살면 닮는 것이 바로 그 원리입니다. 매일 생활에서 예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십시요. 그러면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예수님을 닮아 겸손해 질 것입니다. 말씀이 은혜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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