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우리가 보고 들은 것 (요일 1:1-3)


서론: 오늘은 저희 새 생명 교회가 시작된 지 16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1996년 10월 13일 주일에 6명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린 것이 새 생명 교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목회를 할 마음이 별로 없었고, 목회가 체질에 맞지도 않았는데, 같이 사는 사람이 뭐 제가 목회를 안하면 안될 것이라고 해서 약간 억지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떠밀리기만 해서 목회를 한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있는 그대로 확실히 전하고 싶고 또 성경공부를 좀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목회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실제로 어떻게 목회를 할지 몰랐습니다. 제가 순수하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다른 형제 자매님들을 섬기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예상은 정확히 빗나가고 초기에 제법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일년이 지난 다음에 정식 나사렛 교단으로 창립을 하고 목회를 하는데, 점차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분들이 늘어나 참 감사했습니다. 한 10년간 평안히 목회를 하고 교회 건물도 새로 짓고 했는데 제법 큰 어려움이 제게 다가 왔습니다. 제가 목회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시작할 때도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목회를 그만 둔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시 주님의 은혜와 여러 성도님들의 신뢰에 힘입어 계속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듯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오늘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한 일 밖에 없습니다. 저희 새 생명 교회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시는 분들이 계속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기적이 계속 일어 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요일 1:1-3입니다. 사도 요한이 당시 감독으로 있던 아시아의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당시 아시아 교회에 영지주의와 다른 이단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가 과연 어떤분인가를 바로 알려 주어 교회를 진리의 터 위에  세우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새 생명 교회가 무엇에 촛점을 두고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이며 왜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교회 개척 16주년을 맞아 이 말씀이 새 생명 교회의 갈길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 주시는 말씀이 되기 바랍니다.


1) 우리가 보고 들은 것, 생명의 말씀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요 1:1-3 에 의하면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로고스, 말씀, 즉, 논리이십니다. 이 논리가 곧 하나님이십니다. 비논리적인 것이 신앙적인 것이라고 착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천지 창조에 주체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지어진 모든 것이 하나도 예수님이 없이는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요한이 직접 듣고, 보고, 또 자세히 공부하고, 손으로 만졌다고 했습니다. 요한과 다른 사도들이 이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었고 그 사람들이 다시 그 사실을 후대에 전하여 오늘 저희에게 까지 이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예수님 그 분이 생명을 근원이시요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요일 5:11-13).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인 사람은 자연히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직접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만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에 모셔들인 것입니다 (요 1:12, 벧전 1:8-9, 요 20:28-29, 롬 8:24-25).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모셔들인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속죄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무료로 주어집니다.


2) 보고 들은 것을전함 (2):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그 받은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독교의 적극성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바를 그냥 감추어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받은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나타나신 바 되었는데 사도들이 그 보고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 들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서 오늘날 저희들에게까지 이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복음전파의 명령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명령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 후의 사도나 믿음의 선배들은 이 지상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 20:24).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없으면 말 할 것이 없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녀도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전할 것이 없습니다. 보고 들은 것이 있어도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영리를 알고, 다리 예화를 알고, 훈련을 받았어도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입니까? 아니면 기복신앙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 개인과 교회의 목적입니다.


3) 전하는 목적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는 목적은 우선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영원에 관계되는 도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두 번째의 목적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사귀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님은 잘 아는 사실입니다. 교회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연결 되어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지어져 가는 유기체입니다 (엡 2:19-22). 이 지상에는 완벽한 교회가 없습니다. 완벽한 인간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이 불완전한 교회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피로 교회를 사시고 사랑하십니다 (엡 5:25). 우리가 서로 불완전하니까 교회를 통해 사랑과 용서를 배우고 남을 섬기는 것을 배웁니다 (골 3:12-15). 어떤 사람은 걸핏하면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다 타당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나옵니다.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히 10:24-25에서는 모이기를 힘쓰라고 권고합니다. 교회 개척 16주년을맞아 우리 새 생명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면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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