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사도의 권리 (고전 9:1-10) 

 

서론: 지난 주일에는 고전 8:1-13을 본문으로 해서 ‘지식과 사랑’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 질문했을 때, 바울은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더 근본적인 생활 원리에 대해 교훈을 주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해 고린도 교인들이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지식보다는 사랑이 더욱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지식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마귀나 귀신이나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런 것들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기만 생각하고 다른 형제 자매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행동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만일 음식 때문에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자신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사랑의 한 행동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고전 9:1-10입니다. 바울이 8장에서 우상의 제물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오늘 9장에서 자신이 자유인이며 사도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을 하겠다고 하니 아마 고린도 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이, “아 바울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오늘의 본분에서 자신은 자유인으로서 사도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것임을 알려 줍니다. 오늘의 말씀은 요즘 한국 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목회자의 권위와 사례문제에 대해 교훈을 주실 것입니다.

 

1) 바울의 사도직 (1-2): 1. 신약 교회가 시작된 지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바울이 사도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이 개척한 교회 중의 하나인 고린도 교회에서 조차도 바울이 사도가 아니란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오늘 1절에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사도라는 말은 원래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그리스 당시 제우스의 보냄을 받은 신들이나 왕의 전권대사들에게 사용되는 단어였답니다. 신약 교회에서는 당시에 이 말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게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도 아니고 예루살렘 교회 출신도 아니었으니 당시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 제법 있었습니다. 가롯 유대가 자살하고 그 대신 맛디아를 열두 제자롤 뽑을 때 베드로가 제시한 사도의 자격 중의 하나는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자기들과 함께 다니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행 1:22).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바울은 가말리엘에게 율법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1절에서 자신도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다메섹에 가던 도중에 일어난 사건을 말합니다. 2. 고린도 교인들 중에서도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울의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행 13:43, 14:1, 4, 5, 14, 26등 여러곳과 갈 1:19에서 바울, 바나바,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 대해 사도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 중에 자신이 사도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빨리 그 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오늘날은 사도가 없으며, 보내심을 받은자라는 넓은 의미에서 자신들이 사도라고 생각하면 우리 모든 믿는자가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사도의 권리 (3-7): 3. 당시에 고린도 교회에서도 바울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비판받는 것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4.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먹고 마실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5. 바울도 베드로처럼 결혼해서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여러 교회들을 방문할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살았던 바울의 고백입니다. 6.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전도할 때, 두 사람이 다 교회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지 않고 일하면서 전도했습니다. 다른 사도들처럼 교회의 후원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배울 것입니다. 7. 군대 가는 사람에게는 방위병을 제외하곤 나라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것이 정상입니다. 포도를 심으면 그 열매를 기대합니다. 양떼를 기르면 그 양떼의 젖을 먹는 것이 정상입니다. 오늘날도 반드시 사도가 아니라도 목회에 전념하시는 분에게는 교회가 그 생활비를 부담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목회자가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는 것은 지나치지만 않으면 정상입니다.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교회 지도자들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히 13:17). 사례비 받는 목사님은 다 삯군이다라고 하면 안됩니다. 문제는 복음을 바로 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목회자는 그 교회에서 중간 정도의 생활을 유지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3) 율법적 근거 (8-10): 8. 바울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인간의 논리로도 맞지만 성경에도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9. 신 25:4에 보시면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소들을 위해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복음전하는 사람을 위해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10. 하나님께서 소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지신 것이 아니라 복음전하는 자들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추수할 소망을 가지고 일하고, 추수하는 사람도 그 추수한 것을 자기가 가지려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합니다. 그러니 복음을 위해 수고하시는 목회자나 선교사님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단지 다음 주일에 저희들이 살펴보겠지만 그러한 권리를 다 쓰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 결정을 인정해 주고 형제로 받아 주는 것은 좋은일입니다. 또 그렇게 하는 사람도 그것을 너무 내세우지 말고, 성경에 나타난 좋은 모델로 생각하고 그냥 조용히 목회나 선교를 하면 됩니다. 오늘 말씀이 사도의 권리와 목회자나 선교사님들을 도우는 문제에 대해 교훈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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