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예배 형식 (고전 11:1-16) 

 

서론: 지난 주일에는 고전 10:23-33을 본문으로 해서 ‘많은 사람의 유익’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지만 모든 것이 다 남에게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결정을 내릴때에는 이 결정이 나에게 유익이 될 것인가라고 묻기보다는 이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해 구체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자신의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혹시 불신자가 초청을 할 경우에 그 초청에 가기로 했으면 가서 차려 놓은 음식을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합니다. 어떤 믿는 사람이 앞에 차려 놓은 고기가 우상에게 드려진 것이라고 알려 주면 그 알려준 사람의 양심을 위해 먹지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겠다고 생각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고전 11:1-16입니다. 앞의 장에서 우상 숭배의 문제에 대해 권고한 다음 바울은 이제 예배 형식에 대해 언급합니다. 바울은 여자들이 예배시에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은 본능적이라고 말하고 교회 예배시의 질서에 대해 교훈합니다. 예배시에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아도 긴머리가 있으면 머리에 쓰는 것을 대신한다고 했습니다.

 

1) 바울을 본받음 (1-2): 1. 성경 저자들 중에 자기를 본받으라고 한 사람은 바울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인간적인 면을 본받으라고 한 것은 아니고 자신이 예수님을 본받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바울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목표입니다 (롬 8:29). 그런데 예수님은 보이지 않으시니 누군가 눈에 보이는 사람이 모범이 되면 좋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런 모범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린도 교인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났다는 것이 행운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주위에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의 모범이 될 사람이 있으면 좋습니다. 저도 그런 분이 한 분 계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야간 고등공민학교를 다닐때 그 교장 선생님은 저의 인생에서 본받아야 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 당시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그들에게 보여준 대로 따라해서 그 전통을 지켰습니다. 정확하게 무슨 전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복음의 전통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우리 새 생명 교회도 오직 복음만을 중요시 하는 전통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복음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교회성장이 복음보다 더 중요해지면 타락이 시작됩니다. 새로 한 사람이 교회에 출석하면 먼저 그 사람에게 복음에 대해 말하고, 그 사람이 복음을 잘 모르면 복음부터 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른 이야기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본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2) 예배 형식 (3-15): 3. 바울은 이제 주제를 바꾸어 예배 형식에 대해 말합니다. 근본원리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본질상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지만 위계질서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본질적 동등함과 직책의 위계성을 잘 구분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대통령이나 우리나 본질상 동등합니다. 그러나 직책이 다르고 그 직책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4. 그 원리에 입각하여 기도할 때에도 형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남자는 기도할 때에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5. 반면, 여자는 기도할 때에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으면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고린도에는 거리의 여인들이 머리를 밀고 자신은 남편에게서 자유롭다는 것을 알리고 다녔답니다. 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으려면 한 번 머리를 아주 짧게 깍아 보고, 만일 머리를 짧게 깍거나 미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합니다.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이 정상이지만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 머리를 가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8. 바울은 창조의 원리를 가져와서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그 순서를 지켜야 된다고 합니다.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해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 지음을 받았으니 그 원리를 마음에 두라고 합니다. 10. 그래서 여자는 권세아래 있다는 표를 그 머리에 두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천사들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기도를 하면 예배에 함께 동참하는 천사들도 그 상황을 합당치 않게 생각하니”라고 해석한답니다. 11. 이 말씀은 지금까지 바울이 교훈한 것을 너무 문자적으로 지키지 말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남자 여자를 따지는 것은 그리 유용한 일이 아닙니다. 12. 여자가 창조때에 남자를 통해 난 것이 사실이지만 그 후에는 남자도 다 여자를 통해 납니다. 또 우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남녀 문제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결혼한 지 31년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여자는 반드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그리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서로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13. 바울은 이제 고린도 교인들이 스스로 판단하라고 합니다. 여자가 예배 시간에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합니다. 14.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그것은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합니다. 요즘은 그 본능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5.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아도 긴 머리가 있으면 쓰는 것을 대신하여 줍니다. 여기서 길다는 것은 약간 주관적인 면이 있기도 합니다. 요즘도 카톨릭은 미사를 드릴때 미사포를 쓰는데 개인적으로 그것은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예배시에 기도하는 형식에 대한 바울의 교훈입니다.

 

3) 교회 관례 (16): 기도할 때에 수건을 쓸것이냐 아니냐에 대해 논쟁을 하려면 할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남녀가 평등한데 왜 그런 차별을 하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쪽에서 다 논리적으로 또 성경적으로 예리하게 논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논쟁은 교회에서 관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문제로 논쟁을 하는 것은 그리 유익한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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