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방언과 예언 (고전 14:10-19) 

 

서론: 3주 전에는 고전 14:1-9을 본문으로 해서 ‘알아 듣기 쉬운 말’ 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방언을 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인데 하나님께는 우리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말을 많이 하지 말아라고 마 6:7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방언을 하면 자기에게 유익을 주고 예언을 하면 교회에 유익을 주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방언 보다는 예언을 더 하라고 권했습니다. 예언이 방언보다 더 유익한 이유는 결국 의사 소통의 문제입니다. 방언을 하면 방언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의사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알아 듣지를 못합니다. 바울은 믿는 사람들 끼리도 서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해서 원활한 의사 소통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고전 14:10-19입니다. 방언과 예언에 대해 비교하면서 바울은 구체적으로 수적인 비교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방언과 예언에 대해 확실한 개념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1) 교회의 덕 (10-12): 10. 이 세상에는 언어의 종류가 많은데 뜻이 없는 언어는 없습니다. 각 나라의 말에는 그 뜻이 있는데 말은 하는데 그 뜻을 다른 사람이 알아 들을 수 없으면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11. 우리가 말하는 것을 알아 듣지 못하면 외국인이 됩니다. 미국에 처음 오셔서 영어를 해 보신 분들은 말을 못 알아 듣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방언을 하면 다른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는 말입니다. 1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은사도 풍부해야 하고 또 그 은사를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 제가 한국을 방문했는데 몇몇 분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를 만나는데도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의 유익을 위해 만나는 장소나 시간을 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분은 만나도 크게 기분이 좋질 않았습니다. 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은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은사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2) 통역의 필요 (13-17): 13. 우리의 받은 은사가 교회에 유익이 되려면 우선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사람들이 알아들어야 하니까,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통역하는 은사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14.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영이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내 자신의 마음, 즉 이성은 그 말을 알아 듣지 못합니다. 자신도 알아 듣지 못하는 기도를 많이 하면 이해할 수 없으니 우리의 정신으로 보면 그 기도는 하나마나입니다.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 기도를 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15. 바울은 우리가 영으로 기도하면 또 마음으로도 기도해야 된다고 합니다. 찬송도 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찬송해야 합니다. 삼분법을 주장하는 분들이 여기에서 모순에 빠집니다. 그분들은 우리 인간에게 영, 혼 (정신), 그리고 육체가 있는데 우리가 영이 중요하지 마음, 즉 정신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성령님만 따라 해야지 우리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은 타락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15절의 말씀은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성을 사용하지 않으면 신앙이 감정 위주가 되어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합니다. 16.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이 아무리 영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해도 그 사람이 이해를 못하니 축복 하나마나입니다. 17. 자기 혼자 축복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던지 말던지 관계 없고 내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방언으로 축복하고 기도해도 됩니다.

 

3) 비교 (18-19): 18. 이 절은 바울이 자가 자랑을 좀 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고린도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많이 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다 비교해 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19. 바울의 확실한 비교가 여기 있습니다. 가르치는 말과 방언의 비율은 5:10000 입니다. 1대 2천이고 돈으로 계산하면 5불과 만불의 차이입니다. 제가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어떤분이 방언으로 1만 마디 기도하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제가 5초 동안,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라고 말하면 어떤 방언하는 분이 2시간 46분 동안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이런 확실한 비교를 보고도, “나는 방언을 계속하겠다.”고 하시는 분은 그대로 하셔도 됩니다.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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