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감사의 축복 (빌 4:4-7)

  

서론: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추수감사절은 청교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약 400년 전인 1620년에 Mayflower라는 배를 타고103명의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 해에 추위와 배고품과 질병으로 거의 절반 가까이 죽었습니다. 다음 해에 어려운 가운데 농사를 지어 하나님께 감사하며 잔치를 배푼 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습니다. 도움을 준 인디안들과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오늘은 빌 4:4-7을 본문으로해서 ‘감사의 축복’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우리가 흔히 복을 말할 때는 육신적인 건강이나, 돈을 많이 번다거나 출세를 하는 것 등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것들이 반드시 복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육신적인 것들은 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폐병든 사람이 있었는데, 김진홍 목사님이 열심히 돌봐주어서 건강을 되찾게 되니 힘이 나서 그 후에 자기 부인을 많이 구타했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출세를 해서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대적하십니다. 그런 경우는 복이 아니고 저주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얻어지는 평안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 축복을 잃어 버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 형제 자매님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축복과 마음의 평안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1) 환경과 기쁨 (4): 여기서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기뻐하려면 기뻐해야할 이유가 있어야 되는데 바울은 여기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처해진 상황을 살펴보면 그리 기뻐해야 할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듯이 당시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힌 상황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밖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있다는 이 조건의 긍정적인 가치는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악한 상황의 부정적인 가치보다 더 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안에만 있으면 이 세상의 어떤 악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로인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는 이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려움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롬 8:18). 지금 우리 생활에서 기쁨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몰두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설교도 자꾸 복음적인 설교를 해야 우리 생활에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합 3:17-18을 보시면 하박국이 그리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박국은 자기 소유가 다 없어지더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 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청교도들의 상황도 그리 기뻐하고 감사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지선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쁨을 잃는 것은 환경때문이 아니라 환경에 반응하는 우리 마음의 상태 때문입니다.같은 상황에서 정반대의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불평하고 어떤 사람은 감사합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환경이 불행해서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평안이 없어 자살하는 것입니다. 혹시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분이 계시면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2) 기쁨과 관용 (5): 관용이라는 말은 너그럽고 부드러움을 말합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개 자기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사람은 자꾸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베풀어 줌으로써 마음에 기쁨이 더 넘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에게는 관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인색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자신을 위해 무엇을 사는 것은 크게 아깝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은 아까울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 대해 관용하게 되고 그 관용을 통해 기쁨이 더 넘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관용을 베풀면 자기가 교만해 집니다. 복음 안에서 진정한 관용이 나옵니다. 기쁨과 관용의 근원은 복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인간적으로 했는지 복음 안에서 기쁨으로 했는지 다 들어날 것입니다.

 

3) 염려와 감사 (6): 염려하지 말라고 성경의 여러 곳에서 말씀하십니다. 염려는 감사의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했습니다 (마 6:27). 문제는 염려가 염려에서 그치지 않고 실망과 불평으로 발전되는 것입니다. 염려하면서 자신을 살펴보면 실망하게 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불평하게 됩니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왜 우리 목사님은 실력도 없고 일도 열심히 안하는데 돈을 많이 받는가 불평하면 안됩니다. 시 37:8을 보시면 불평하면 악을 만들뿐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왜 감사해야 됩니까? 역시 복음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드릴 수 있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그 사실이 감사한 일입니다.

 

4) 감사의 축복 (7): 바울이 왜 감사의 기도를 하라고 하느냐 하면, 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게 되면 그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평안은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평안입니다. 상황으로 봐서는 도저히 평안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해할 수 없는 평안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줍니다. 이성적으로만 평안한 것이 아니고 감정적으로도 평안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축복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부분적으로 믿습니다. 복음은 쉬우니 받아들이고 다른 교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하시면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머리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억지로라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결정할 때 평안의 축복이 올 것입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오늘 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 형제 자매님들이 이 기쁨과, 감사와, 평안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List of Articles
NO Subject Date Read
146 율법과 사랑 (행 21:17-26) 2013.02.25 6150
145 예루살렘으로 (행 21:1-16) 2013.02.25 6133
144 고별 설교 (행 20:17-38) 2013.02.25 6622
143 유두고 (행 20:1-16) 2013.02.25 6201
142 바울의 헌신 (행 19:21-41) 2013.02.25 6024
141 에베소에서의 역사 (행 19:8-20) 2013.02.25 6280
140 믿을 때에 받는 성령 (행 19:1-7) 2013.02.25 5052
139 복음에 대한 깨달음 (행 18:18-28) 2013.02.25 5713
138 고린도에서 (행 18:1-17) 2013.02.25 5912
137 철학적 설교 (행 17:16-34) 2013.02.25 5707
136 성경을 가지고 (행 17:1-15) 2013.02.25 5120
135 두 가지 기적 (행 16:26-40) 2013.02.25 5099
134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삶 (살전 5:16-18) 2013.02.25 5401
133 옥중의 바울 (행 16:16-25) 2013.02.25 5317
132 성령님의 인도 (행 16:6-15) 2013.02.25 5310
131 디모데 (행 16:1-5) 2013.02.24 5687
130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 (행 15:30-41) 2013.02.24 7605
» 감사의 축복 (빌 4:4-7) 2013.02.24 5311
128 교회의 결정 (행 15:22-29) 2013.02.24 6091
127 믿는자의 생활지침 (행 15:12-21) 2013.02.24 5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