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옥중의 바울 (행 16:16-25)

  

서론: 지난 주에는 행 16:6-15을 본문으로해서 ‘성령님의 인도’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울 일행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을 떠나 아시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려 했을 때, 성령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성령님께서는 바울에게 음성을 들려 주신 것이 아니라 환경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지 않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바울이 아시아 지역인 비두니라로 가려고 애를 썼다는 사실이나, 그 다음에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았을 때, 즉시 순종한 것을 보아도 당시 바울이 성령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는 성령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듣도록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 12:3).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인도하실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주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의 원리에 순종해서 살면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사람들을 준비시키셔서 우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행 16:16-25입니다. 바울 일행이 기도하러 가다가 귀신들린 여종을 한 사람 만났는데 그 여종이 계속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사람들에게 소리지릅니다. 바울이 그 여종에게서 귀신을 쫒아 내었는데 그 일 때문에 오히려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기록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과연 귀신을 쫒아 내는 것이 어떤 것이며,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를 통해 우리의 환경에 관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해야 한다는 원리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귀신을 쫒아냄 (16-18): 16. 지난 번 루디아를 만날 때에도 기도하는 곳을 찾다가 만났는데 이번에도 또 기도하는 곳에 가고 있는 중에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하는 것이 일상 생활이 되어 있으면 좋습니다. 물론 기도는 아무때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경건의 시간이나 교회에서 기도 모임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기도 생활을 지속적으로 하면 신앙이 깨어 있고 감사의 생활이 됩니다. 골 4:2은 “기도 생활을 지속적으로 하면 깨어 있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생활에 불평이 늘어가면, “아, 내가 기도를 바로 하지 않고 있구나.” 라고 깨달으시면 됩니다. 바울 일행이 만난 이 여종은 귀신들려 점을 치는데 아주 용한 점장이여서 돈을 제법 잘 벌었습니다. 17. 이 용한 귀신이 바울 일행을 알아보고 따라 다니며 소리지릅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18.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제법 오랬동안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심히 괴로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쫒아내었습니다. 왜 바울이 괴로워 했겠습니까? 귀신 때문에 복음을 더 잘 전해질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바울은 그런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귀신의 힘을 빌러 복음을 더 잘 전한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님의 힘 외에 다른 이상한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한 바울이 한번 말하니까 귀신이 바로 나간 사실입니다. 요즘 귀신 쫒아낸다고 사람을 결박해서 오랫동안 안수기도한다고 구타하고 이상한 짓하는 것은 성령님의 힘이 아닙니다. 

 

2) 옥에서 기도와 찬송 (19-25): 19. 그 여종에게서 귀신이 나가니까 그 여종의 주인들이 돈을 못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잡아 관리들에게 끌어갔습니다. 여종의 병이 나은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돈 못벌게 된 것을 큰 일로 생각했습니다. 못된 사람들입니다. 20. 관리들에게 바울과 실라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성을 요란케 한다고 거짓말했습니다. 21. 그리고는 자기들이 로마 사람이라고 인종 문제를 거론합니다. 참 웃기는 이야기는 이 사람들은 로마의 식민지 사람으로서 정말 로마인은 아닙니다. 마치 일제시대 때 한국의 매국노들이 자기가 일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인권이나 나라까지 팔아먹는 사람들입니다. 돈에 눈이 어두우면 이렇게 됩니다. 22. 그 성에 자기편들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했습니다. 그러니 로마 관리들이 바울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했습니다. 23. 바울과 실라가 많이 맞았습니다. 그 다음에 옥에 갇혔습니다. 24. 간수가 명령을 받아 두 사도를 깊은 옥에 가두고 발에 차꼬를 채웠습니다. 좋은일 하고 매로 맞고 옥에 갇혀 차꼬를 차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불평할 수 있지 않습니까? 25. 이렇게 좋은일 하고 매맞고 옥에 갇혔는데 밤중에 이 두 사도가 일어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죄수들도 다 그 기도와 찬송을 들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 불평하고 변명합니다. 이렇고 저렇기 때문에 기도 못하고 성경 못 읽는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교회도 못 나오고 복음도 못 전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당한 이정도 환경이면 불평을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도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에 갇히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찬양한 것입니다. 그러니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무엇 때문에 복음 못 전하는 사람이 있고 무엇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다 합니다. 노름 좋아하는 사람은 손을 작두로 끊고난 다음에 붕대에 화투를 끼우고 다시 노름합니다. 바울과 실라도 찬양할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위해 고난 당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을 것입니다. 행 5:41에 보시면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능욕받은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 분을 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욕먹고 능욕받은 것은 기쁨과 영광입니다. 하늘 나라에 그것이 기록될 것입니다 (롬 8:18). 예수님을 위해 복음 전하다가 봉변당하고 민망하게 되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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