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믿을 때에 받는 성령 (행 19:1-7)

 

서론: 2주전에는 행 18:18-28을 본문으로해서 ‘복음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목회를 끝내고 모교회인 안디옥 교회로 가려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와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에베소에 남겨두고 자신은 안디옥으로 갔는데 그것이 2차 전도여행의 끝이었습니다. 얼마를 지난 후에 다시 바울은 안디옥을 떠나 3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한편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라는 율법학자를 만났는데 이 아볼로는 예수님께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복음을 깨닫지 못했고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를 따로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다니는데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인으로 마음에 모셔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일 때에 비로소 우리는 거듭나서 영원한 속죄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행 19:1-7입니다. 아볼로는 고린도에 와서 목회를 하고 바울은 에베소로 다시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성령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성령님이 계시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했고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바울이 안수했을 때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당시에 왜 어떤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예수님께 대해서는 몰랐는지, 그리고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1) 성령의 계심도 못들음 (1-2): 1.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복음을 깨닫고 고린도로 갔습니다. 바울은 이제 3차 전도여행 중에 다시 에베소로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대화를 했습니다. 2. 아마 바울이 그들을 만나 대화를 하니 예수님께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던 사람들이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우리는 성령이 계신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가 문제입니다. 여러 학자들이 이 사람들의 정체에 대해 이론들을 내어 놓았습니다. 3-4을 보시면 이 사람들은 누군가를 믿기는 믿었는데 세례를 받을 때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듣기는 들어봤는데, 세례를 받을 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고 세례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령님이 계신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4복음에서 제법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눅 1:5-26, 39-45, 57-80과 요 1:6-8, 15, 19-34, 요 3:22-30을 보시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전에 태어나서 광야에서 생활했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직분을 받아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길을 다 예비한 후에는 자신이 쇠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 3:30). 마 14:1-14을 보시면 세례 요한은 헤롯을 책망하다가 목이 잘려 죽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 분들은 당시에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들어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을 기회가 없이 오순절의 사건도 경험하지 못하고 유대를 떠나 다른 지방으로 다녔던 사람들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그래서 이 분들은 세레 요한의 세례를 받고 성령이 계신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볼로처럼 에베소에 있었고 아볼로처럼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베소에 그러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2) 세례 요한의 세례 (3-4): 3.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바울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이 무슨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랬더니 대답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였습니다. 4. 그래서 역사를 아는 바울이 말해줍니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했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세례 요한은 알고 그의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 요한이 예언한 예수님께 대해서는 더 이상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예수님을 믿을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 교회는 오래 다녀도 복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분들과 비슷합니다. 예수님께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믿는 것인지 들어본 적이 없으니 믿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3) 성령이 임하심 (5-7): 5. 바울의 말을 들은 그들은 마음이 열려져 있으니 예수님을 믿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6. 세례를 받은 후에 바울이 안수하니까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7. 한 12 명쯤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다고 영접 기도를 할때, 예수님이 물리적으로 우리 마음에 들어 오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물리적으로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계십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분은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행 19:2, 계 3:20). 사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수도 없습니다 (고전 12:3, 롬 8:16). 요 14:16-17, 26을 보시면 성령님께서는 한번 우리에게 들어 오시면 영원히 계시며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책망하시고, 우리를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요 16:8, 13). 성령님이 거하시는 우리의 몸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고전 3:16-17). 안수할 때 성령이 내려 오실 수도 있지만 안수한다고 다 성령님이 오시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할 수도 있는데 다 방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전 12: 4-11). 성령님의 활동을 방언으로만 제한시키는 것은 오류입니다. 특히 요즘 방언한다는 분은 그리 믿을 만한 분들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갈 5:22-23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성령님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아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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