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주여 누구시니이까? (행 9:1-9)

 

서론: 지난 주일에는 행 8:26-40을 본문으로해서 개인전도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전도하고 목회하고 있을 때, 주님의 사자가 나타나 가사로 가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마리아에서 가사로 내려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준비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 듣고 믿음 사람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게 되는 것도 우리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행 9:1-9입니다. 사울이 다메섹 가는 도중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을 받고 땅에 엎드려져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똑 같은 경험을 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과연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인지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사울의 종교생활 (1-2): 1.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는 열심히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갈 1:13-14를 보시면 바울은 과거에 율법에 대해서는 열심이 있었으나, 그 열심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려고 했습니다. 목회자들도 열심히 목회를 하는데 잘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거스리게 됩니다. 2. 이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핍박한 것도 부족해서 다메섹에 까지 가서 거기서도 교회를 핍박하려고 했습니다. 다메섹은 수리아의 한 고대 도시로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로 인해 믿는 자들이 거기로 피신해서 교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열심 있는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복음을 전할 생각은 안하고 교회 성장이라는 엉뚱한 일에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교회만 성장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의 중심 목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봉사하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 궁극적 목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2) 주님 누구십니까? (3-6): 3. 사울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췹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사울을 더 이상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고 또 때도 되었으니 이제 개인적으로 그를 부르십니다. 모든 믿는 사람이 다 사울처럼 이러한 경험을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필요합니다. 4. 말을 타고 갔는지 걸어 갔는지 모르지만 사울이 놀라서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그런데 소리가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십니다. 행 26:14을 보시면 사울이 자기 간증을 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한마디 더하신 말씀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버릇 나쁜 말이나 소 뒤에 가시채를 놓아 두어서 그 뒷발질 하는 버릇을 고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마치 사울이 그런 못된 습관이 있는 짐승처럼 자기가 하는 일을 잘 모르면서 자신에게 해되는 일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5. 사울이 그 말씀을 듣고 대답합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누군가를 만났을 때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울은 놀라서 질문합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신 것을 보니 보통 분이 아니신데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대답이 들립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이 더 놀랐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사울은 예수라는 사람은 한 목수의 아들로 이단의 두목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분이 바로 지금 내게 빛을 비추는 하나님이시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행 22:8-10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끝난 다음에 사울이,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질문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6.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단락에서 우리는 예수님은 과연 누구신가에 대해 사울의 질문을 약간 바꾸어 자신에게 질문을 한번 던져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형제 자매님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그리고 생활의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정말로 내 생활에 주인이신가를 다시 한번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과연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그냥 내 생활을 좀더 윤택하게 해주고 내가 사업을 하다가 혹은 공부를 하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사업을 잘 되게 해주시고 공부하는데 도움을 주시는 분인가, 아니면 정말 그분이 내 모든 생활의 주인이 되시는가? 지금 생각해 보시든지 혹은 집에 가셔서 조용히 한번 생각해 보시고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한번 만나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 깨닫고 난 후 (7-9):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이상한 소리만 듣고 아무도 못 보았습니다. 행 22:9을 보면 함께 있던 사람들은 빛은 보았고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아마 함께 있던 사람들은 사울과 같이 길을 가다가 이상한 빛이 비추는 것을 보았고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8. 사울은 눈을 떴는데 보이질 않았습니다. 몇 분 전과는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몇분전에는 의기 양양해서 길을 갔는데, 그때는 자기가 상당히 권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자신의 길도 마음대로 갈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닫게 됩니다. 9. 사흘 동안 보이지도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겸손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겸손하게 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해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복음의 원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렇게 교만해질 이유를 잘 모를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내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면 뭐 그리 교만해질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가치 하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이니 거기서 또한 무한한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이 겸손과 자긍심이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성숙된 그리스도인의 자아상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님들도 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겸손과 자긍심을 동시에 가지고 복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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