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베드로의 사역 (행 9:32-43)

  
서론: 지난 주일에는 행 9:19하-31을 본문으로해서 사울과 바나바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고난 다음에 며칠 있다가 바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격이 직선적이고 예수님께 즉시로 순종하는 것이 사울의 특징입니다. 어려움이 오는 것을 알지만 예수님의 명령이면 서슴 없이 행하는 사람이 곧 사울입니다. 사울은 나중에 딤후 3:12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바나바는 다른 사람을 잘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사울을 피하고 교제하기를 싫어할 때, 바나바는 사울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성격이 다르고 예수님께 쓰임을 받는 형태가 다르지만 두 사람 다 하나님께 헌신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님들도 다 다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때 교회가 평안하고 성령님의 위로를 통해 수가 늘어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행 9:32-43입니다. 베드로가 여러 곳을 다니며 중풍병자도 고치고 죽은 사람도 살리는 기적을 행하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데 도움을 주는 그런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기적을 행하시는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원리를 잘 이해하면 교회내에서 엉뚱한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1) 중풍병자를 고침 (32-35): 32. 당시에 교회가 여러 곳에 생겼으니 이제 베드로는 한 곳에서 목회를 하는 것 외에 여러 곳을 다니면서 교회들을 둘러 보는 사역을 했습니다. 이런 사역도 상당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감독들이나 목회자들이 전도 여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룻다라는 곳에 갔습니다. 룻다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38 키로 떨어진 곳인데 아마 거기에도 교회가 세워졌던 것 같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로 인해 교회가 흩어졌을 때 사람들이 룻다에 가서도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33. 그런데 룻다에 애니아라는 한 남자가 중풍이 들었습니다. 8년간이나 잘 거동을 못하고 침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 분은 아마 믿지 않는 사람이거나 믿은 지 얼마 안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피난 온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34.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애니아가 바로 일어났습니다. 요즘 병 고친다는 사람들 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낫게하시려면 그냥 저희들은 말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기도를 오랫동안 큰 소리로 한다고 병이 낫는 것이 아닙니다. 말 한마디로 쉽게 나아야 우리가 한 일이 별로 없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이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 많이 해서 병이 낫게 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도를 믿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합니다. 35. 애니아가 중풍병에서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애니아를 보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한 사람의 병이 나으면 그 사람도 좋고 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는 목적도 병이 나아서 사람들이 믿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2) 도르가가 살아남 (36-43): 36. 욥바는 룻다보다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56키로 떨어진 곳이랍니다. 룻다에서 다시 북서쪽으로 약 18키로를 더 가는 곳입니다. 거기에 다비다, 즉 도르가라는 한 여제자가 살았는데 그동안 구제와 선행을 많이 했습니다. 도르가는 헬라어로 ‘어린양’이란 뜻인데 아람어로는 다비다라고 합니다. 37. 이 도르가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해도 병들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안타까우니까 시체를 씻어 다락방에 뉘였습니다. 38. 사람들이 베드로가 룻다에서 중풍병자를 고쳤다는 소문을 들었고, 또 룻다가 욥바에서 약 18키로 밖에는 안되니 두 사람이 룻다로 가서 베드로에게 속히 욥바로 와 달라고 청했습니다. 이때 베드로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잘 아시겠지만 죽은 사람 살리는 것은 중풍병자 고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둘다 전혀 다른 것이 아닙니다. 39.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으니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갔는데 많은 여제자들이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살았을 때 지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습니다. 평소에 선행과 구제를 하면 죽어서도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평소에 자기만 알고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해치던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이 잘 죽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잠간 생각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40 일이 심각하니까 베드로가 다른 사람들을 다 나가라고 했습니다. 조용히 하나님께 간구하려 그랬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무능력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만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를 마치고 시체를 향해 말했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간단 명료한 말입니다. 그냥 일어나라고 하면 됩니다. 그랬더니 도르가가 눈을 뜨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렇게 쉽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자나 산자나, 모든 피조물이 다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힘이 없으니 살아 있는 사람보고 말해도 잘 안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사람도 듣고 순종합니다.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도르가를 일으키고여제자들을 불러 도르가가 살아난 것을 보였습니다. 42. 온 욥바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듣고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니 사람들이 쉽게 주님을 믿습니다. 요즘도 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필요에 따라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억지로 이런 기적을 일으키려 하니까 말썽이 생기는 것입니다. 43. 욥바에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으니 베드로는 거기서 얼마간 시몬이라는 가죽장사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한번 인지하십시다. 하나님께는 중풍병자나 죽은자나 다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모든 병을 쉽게 고치실 수 있습니다. 또한 기적의 목적은 예수님을 믿는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면 모방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NO Subject Date Read
126 예루살렘 회의 (행 15:1-11) 2013.02.24 5949
125 복음에 대한 열정 (행 14:19-28) 2013.02.24 5915
124 핍박과 칭찬 (행 14:1-18) 2013.02.24 5982
123 창조의 아름다움 (시 8:1-9) 2013.02.24 5736
122 하나님의 은혜 (롬 3:19-28) 2013.02.24 5783
121 영생 받기로 작정된 자 (행 13:42-52) 2013.02.24 5815
120 권고와 경계 (행 13:31-41) 2013.02.24 5827
119 선지자와 복음 (행 13:13-30) 2013.02.24 5735
118 바울의 1차 전도여행 (행 13:1-12) 2013.02.24 5706
117 헤롯의 죽음 (행 12:18-25) 2013.02.24 5737
116 하나님의 주권 (행 12:1-17) 2013.02.24 5996
115 그리스도인 (행 11:19-30) 2013.02.24 5485
114 베드로의 지도력 (행 11:1-18) 2013.02.24 6064
113 복음의 증인 (행 10:34-48) 2013.02.24 5666
112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행 10:17-33) 2013.02.24 6063
111 두 환상 (행 10:1-16) 2013.02.24 5344
» 베드로의 사역 (행 9:32-43) 2013.02.24 5786
109 사울과 바나바 (행 9:19하-31) 2013.02.24 6139
108 아나니아와의 만남 (행 9:10-19상) 2013.02.24 5531
107 주여 누구시니이까? (행 9:1-9) 2013.02.23 5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