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예루살렘 회의 (행 15:1-11)

  

서론: 지난 주일에는 행 14:19-28을 본문으로해서 ‘복음에 대한 열정”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내고, 제자들이 그를 장사하려고 둘러 서 있을 때, 바울은 몸을 틀고 일어서서 루스드라 성으로 들어갔다가 그 다음날 바나바와 함께 바로 더베로 가서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은 바울의 헌신과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은 이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력에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열정은 불평과 분렬을 야기시키지만 성령님으로부터 주어진 열정은 복음전파와 하늘나라를 위해 쓰여질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에서 뒤돌아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을 거쳐 수리아 안디옥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게 됩니다. 안디옥에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보고회를 열고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약 1년간 목회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사도들의 헌신과 열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알려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면 복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행 15:1-11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예루살렘에서부터 어떤 유대인들이 내려와서 구원을 받으려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과 그들 사이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니 믿는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와 다른 형제들을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보내어 그 구원의 교리에 대해 명확한 답을 얻어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 가서 장로들을 만나 문제를 제기하고 그 후에 베드로의 설명이 오늘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는 본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회의 지도자들을 사용하여 복음을 정화시키시는가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1) 문제의 발단 (1-3):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안디옥으로 와서 형제들을 가리치기를,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행 15:24을 보면 이 사람들은 사도들의 지시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법이요 습관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모든 이방인도 그렇게 해야 되는 줄로 생각하고 복음의 원리도 생각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자기들의 습관을 복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모교회로부터 왔으니 사람들이 그런가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2.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의 원리를 알고 있으니 그 사람들과 다툼과 변론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해 확실히 알고 그 복음에 대해서는 일호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갈 1:8). 왜냐하면 복음을 잘못 전하면 한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지장을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복음의 원리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 1:12, 롬 10:9-10, 엡 2:8-9). 우리가 다른 문제들 때문에 말다툼을 한다든지 변론을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구원과 복음에 관계되면 그 문제를 명확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설교 시간에 비복음적인 설교를 하면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히 규명해야 할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형제들도 약간 혼동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바울과 바나바와 다른 몇 사람을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아니면 그 사람들의 말을 그냥 무시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통해 복음을 정화시켜 나가십니다. 3. 바울 일행이 안디옥을 떠나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가면서 형제들에게 간증을 했습니다.

 

2) 율법적 그리스도인 (4-5): 4.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가니 사도와 장로들이 그들을 영접했고, 바울은 또 간증을 하고 안디옥 교회의 상황을 말해주었습니다. 5. 그랬더니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이 바리새파 사람들은 워낙 율법에 젖어 있었으니, 예수님을 믿고도  자기가 그런 말을 하면 그것이 복음의 원리와 다르다는 것 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이런 율법적인 습관에 젖어 있어서 십일조와 주일 성수를 강조하는 설교자들이 많고, 이상하게 마치 성령 세례와 방언이 구원의 조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설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다시 말해 주어야 합니다.

 

3) 베드로의 지도력 (6-11): 6. 구원의 조건이 무엇이며, 이방인들이 믿고난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니 사도와 장로들이 모여, 7.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한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합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오래전 부터 자기 베드로를 택했다고 했습니다. 아마 고넬료의 사건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8.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유대인에게 하시듯이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셨습니다. 행 10:44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9.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믿음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롬 1:16). 10. 그런데 율법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자기도 율법을 지키지는 않으면서 다른 사람보고 율법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자기 조상들도 못 지켰고, 현재 자기들도 못지키면서 이방인 형제들 보고는 율법을 지키라고 명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위선입니다. 요즘 목사님들하고 비슷합니다. 자기는 형제 사랑 안하면서 다른 사람보고는 형제 사랑하라고 하고, 자기는 십일조 바로 안하고 주일 성수 안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하라고 가르칩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율법을 온전히 못지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약 2:10-11). 그러니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11. 그리고는 복음을 다시 한번 명료화 시킵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은 줄을 믿노라.”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런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또 베드로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통해 복음이 확립되니 그 순수한 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 복음에 가감하지 말고 순수하게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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