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 1:1-14)


서론: 오늘은 카톨릭이나 개신교에서 크리스마스로 지키는 날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역사를 보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우선 12월 25일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눅 2장을 볼 때, 5월 정도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지 않으셨나 추측합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짜를 밝히지 않았고 초대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4세기 중간에 교황 쥴리어서 1세가 로마 이교도들의 겨울절기인 Saturnalia festival 을 흡수하여 12월 25일로 날을 정해서 지키기 시작한 것이 크리스마스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그 기원이나 목적이나 또 오늘날의 현상이 전혀 성경과는 관계없는 절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복음전파에는 관심이 없고 절기나 날을 지키는데 그 힘을 쓴다면 타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학교에서 이 정도는 다 배우는데 목사님들이 잘 기억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로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인 요 1:1-14을 통해, 예수님이 과연 누구시며, 왜 이 세상에 오셨으며,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셨는가를 살펴 보기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시면 1-5절 까지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분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분은 말씀이시요, 생명이시며 빛이십니다. 6-8절은 세례 요한에 대해 말씀합니다. 세례 요한은 구세주가 아니라 구세주에 대해 증거하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9-14절은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었는가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말씀, 생명, 그리고 빛 (1-5): 1. 헬라어 logos라는 단어는 말씀, 토의, 이론, 원리, 혹은 논리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당시 헬라의 철학사조로 봐서 인간이 말을 할 때나 토의를 할 때는 논리에 맞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도 많은 학문의 기초는 다 논리입니다. 인간은 논리를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당시의 철학 세계에 사도 요한은, 논리의 가장 근본되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알려 줍니다. 그 분은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 즉 예수님이십니다. 2. 그 분은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고, 3. 천지가 창조 될 때도 다 예수님을 통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 1:3에서 “빛이 있으라.”라고 하셨을 때, 그 말씀이 곧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창조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님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4. 그런데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논리의 총체이신 진리의 말씀인데, 그 진리의 말씀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진리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논리와 이론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밝은 희망의 빛을 줍니다. 5.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참 빛이, 죄로인해 어두워진 이 세상에 오셨는데, 어두움은 그 빛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죄 속에 빠진 인간은 성령님의 조명 없이는 빛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논리적인 진리의 말씀이시며,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빛이 되십니다.

2) 빛에 대한 증거 (6-8): 6. 이 빛에 대해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곧 세례 요한입니다. 당시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에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세례 요한의 교훈을 받고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데, 이 분들은 아직 거기까지는 못 이른 분들입니다 (행 18:24 - 19:7).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께 대해 증거하러 온 사람임을 밝혔습니다. 7. 세례 요한이 온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8. 세례 요한은 이 세상의 빛이 아니라 빛에 대해 증거하러 온 사람임을 명백함을 알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증거하는 사람은, 성경의 핵심이 무엇이며, 누구를 믿어야 하며, 누구를 통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 지, 명확하게 알려 줄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구분하여 알려 주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에서 중요한 하나님의 의와 신과 인은 버리고 중요하지 않은 십일조를 강조했습니다 (마 23:23-24). 요즘 목사들과 똑 같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예수님께 대해 증거해야지, 교회성장이나, 십일조 주일성수 같은 것을 복음보다 더 열심히 전하면 안됩니다. 중요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신경쓰다보면 당연히 복음전할 여유와 시간이 없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그분 자체, 복음 자체에 대해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3) 말씀이 육신이 되어 (9-14): 9-11. 인간이 얼마나 타락했으면, 참빛이 이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비췄지만 그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 세상이 창조되었지만, 이 세상은 예수님을 알지 않았습니다.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 백성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12.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과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 즉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구원의 가장 기초가 되는 믿음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죄에서 건져내신 나의 주인이시다.”라고 시인하면, 그 마음에 이미 성령님께서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고전 12:3). 술취하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속이려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영원한 생명을 받습니다 (롬 10:9-10). 이것이 곧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13. 그런데 이렇게 시인하고 영접하는 것은 인간의 힘이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셔야 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1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 분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면, 그 분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충만히 거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공부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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