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예수를 따르려면 (눅 9:51-62)

서론: 지난 주일에는 눅 9:37-50을 본문으로 해서 ‘관심의 차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기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한 영원한 구원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 중에 누가 더 크고 괜찮은 사람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가장 작은자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변화되기 전의 요한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생각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많은 교인들과, 사역자들까지,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물질과 교회 성장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영원한 속죄와, 영원한 생명과, 천국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복음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9:51-62입니다. 51-56에 나오는 기록은 지난 주일 설교에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과시하는데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57-62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따라오려면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교훈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려는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1) 야고보와 요한에 대한 꾸중 (51-56): 51. 예수님의 관심은 다가올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그 일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52.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마리아를 통과해야만 했기 때문에, 제자 중에 몇 사람을 불러 미리 사마리아에 가서 예수님의 거하실 곳을 예비하게 하셨습니다. 53. 유대인들이 평소에 워낙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해 왔으니까,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을 그리 반갑게 맞이하질 않았습니다. 54. 누구나 자기를 반갑게 맞이하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그런데 요한과 야고보는 원래 성질이 좀 급했습니다. 막 3:17에 이 두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우뢰의 아들, 즉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더하셨던 것을 보면 요한과 야고보의 성질이 번갯불에 콩볶아 먹는 그런 급한 성질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기들에게 능력이 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명해 이 사람들을 다 멸해버릴까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요즘 못된 목사들과 비슷합니다. 55. 예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시고 꾸짖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본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무슨 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가 온 것은 인간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노라.” 요즘 말로 하면, “너희들 제 정신이 아니지?” 이말씀이지요. 자기들이 받은 능력과 사명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인데, 요한과 야고보는 그 권위를 자기 성질대로 사용해 사람들을 멸하려고 했습니다. 요즘 몇몇 목사님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사명은 복음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권위를 도용해 돈을 벌고 대접받기에만 급급해 있습니다. 56.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 동네를 피해 다른 촌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도 정신차려야 할 것입니다.

2) 제자의 세 가지 기본 조건 (57-62): 이 단락에서는 예수님께서 다른 촌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시는 중에 사람들과 만나 말씀하시는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7. 길을 가시는데 어떤 사람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어디를 가시든지 따르겠습니다.” 마 8:19을 보면 이 사람은 서기관입니다. 이 말을 했을 때, 진심으로 했기를 바랍니다. 잘 모르지만 이 사람에게 대해 더 이상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 예수님 따르기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제 경험으로 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신실성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진실한 사람들은 이런 말 잘 안합니다. 그냥 따릅니다. 58.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 무슨 말입니까? “나를 따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네가 나를 따르면서 경제적인 유익을 얻으려 한다면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경제적으로 손해도 각오하고, 빈궁해 질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가 대접만 받으려 하면 안됩니다. 요즘 많은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의 생각과는 정 반대의 교훈입니다. 예수님 이용해 경제적 유익을 얻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사역자는 경제적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59. 또 한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좇으라.” 고 하셨습니다. 마 9:21을 보면 이 사람은 예수님 제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부터 먼저 장사지내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합리적인 말입니다. 60.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비인간적인 말씀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인륜을 무시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에 관계되는 복음전파는 인륜을 지키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마 10:37-39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사역자는 가족의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해 설교 끝난 다음에 질문하십시요. 61.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겠는데, 우선 가족과 작별이나 하고나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도 합리적고 인간적인 말입니다. 62. 예수님은 그 사람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데는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한글 번역에는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되어 있어서 마치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번역되어있는데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천국은 가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데는 합당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다가 뒤를 돌아본다는 말은, 주님 섬기다가 이제 세상을 돌아보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대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은혜를 받고 그것에 감사해서 비록 불가능하지만 그 은혜를 갚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은혜를 받고 그것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유익만 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는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께 헌신하여 주님을 위해 살기 원하고, 후자는 주님을 이용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려 합니다. 두 사람 다 구원은 받겠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은 많이 다를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상도 다를 것입니다. 전자를 복있는 자라고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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