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목사

복음고등공민학교 16회 졸업

경북대학교ㆍ대학원 졸업후 도미

현재) 미국 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MTSU) 심리학과 정교수

     미국 Tennessee Nashville 새생명교회 담임 목회자

 

마르다의 불평 (눅 10:38-42)

서론: 지난 주일은 부활절이어서 눅 24:1-12을 본문으로해서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선 부활절 자체가 역사적으로 봐서 그리 순수하지 못하고 성경과는 다르다는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 지도자들이 잘못한 것이 참 많습니다. 인간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큰 실수들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기대하고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을 때, 여인들은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했습니다. 우리들도 생활에서 잘못하면 살아 계신 예수님을 죽었다고 생각하고 행동할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10:38-42입니다. 베다니라는 동네에 나사로라는 청년이 살았는데, 예수님께서 그 가정에 자주 가시곤 했습니다. 이날도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가셔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나사로의 두 여동생의 행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바쁘게 일하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두 자매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 그리고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바른 태도에 대해 교훈을 받았으면 합니다.

1) 두 자매의 선택 (38-40상): 38. 예수님께서 여기 한 촌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베다니에 가시니 마르다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정과 상당히 친밀하게 지내셨습니다. 요 11장을 보시면 나중에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를 살려 주시는 기적도 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요 11:11). 39. 그 집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마르다의 여동생인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40상. 마르다는 예수님 대접하느라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별로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한가지 세밀하게 살펴보면 마리아가 좀 얌체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각각 다른 선택을 했으니 그냥 받아들일만 합니다. 손님이 집에 오시면 그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손님과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경향성이 좀 다른 것은 확실합니다. 마르다는 주로 음식으로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마리아는 주로 손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항상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닙니다. 요 12:1-8을 보시면, 자기 오빠 나사로를 살려주신 예수님께,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행동을 극찬하셨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어디에서든지 이 여인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막 14:3-9 참조). 마르다는 일을 잘 해서 자신을 희생하여 예수님을 대접했고, 마리아도 마르다 못지 않게 주님께 희생하여 주님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우리가 다 같은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각각 다른 일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또 다른 사람을 섬깁니다. 롬 12:3-13을 보시면, 성도들이 교회에서 각각 받은 믿음의 분량대로 성실하게 주님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되신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고 또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세로 생활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2) 마르다의 불평 (40하): 문제는 그러한 상황에서 마르다가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혼자 너무 많은 일을 하면 자연히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저도 한 10년간 교회에서 혼자만 일한다고 생각하니 불평이 나옵디다. 혹은 실제 하는일과는 관계없이, 혼자 너무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을 하면 불평이 나옵니다. 그럴때는 불평보다는 지혜롭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그리 쉬운일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제 여러 방면에서 교회를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혹시 어려우시면 제게 말씀하십시요. 제가 최선을 다해 다른 방도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르다는 불평이 쌓여서 예수님께 약간 비난성의 발언을 했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자기가 그냥 도움을 청하면 될텐데, 참고 참다가 예수님께 불평을 터뜨리니 문제가 됩니다. 불평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시 37:8을 보시면,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평을 자꾸할 버릇하면 악을 행하게 됩니다.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예수님의 대답 (41-42):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라고 두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안타까움을 나타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위해 수고하는 것은 참 좋은데, 불평으로 끝나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회와 남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은 참 좋은데, 잘못하면 그것으로인해 불평을 하게 되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르다는 일을 많이 하다보니 그만 염려가 되고 마리아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upset). 교회에서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왜 내만 일을 해야되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도우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지금 우리 형제 자매님들이 일을 나누어 하니 목회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42. 예수님의 대답이 또 희한합니다. 몇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가지 만이라도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일을 좀 적게 해도 불평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했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말씀을 듣는 것이 음식하는 것보다 더 좋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 부엌에서 음식하는 것도 좋지만 예배드리는 것이나 말씀 공부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러면 교회에 점심하는 것 안해야지” 이렇게 생각하실 분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렇다고 마리아가 주님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다. 복음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면 일에 중점을 두기 쉽습니다. 복음을 깨닫고 주님께 헌신된 사람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나는 죽었구나를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소한 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나는 죽고 주님만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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